[사람 사람] "시 사랑에는 남북한 차이 없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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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우리 민족은 시를 좋아하는 민족입니다. 공화국(북한)이나 남조선(한국)이나 같습니다. 그건 아마 우리가 흥을 아는 민족이기 때문일 겁니다. (잠시 멈칫하더니)아니지, 그보단 한(恨)이 많아서일 겁니다."

지난 12일 방한한 조총련계 재일동포 김학렬(70)씨는 민족문학에 정통한 학자이자 시인이다. 재일본조선문학예술동맹 고문이자 와세다대.일본조선대(조총련계 대학) 강사인 그는 조총련계 학생들에게 '조선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남북 시인 10여명의 작품이 교재다. 남측 시인으로는 신경림.고은.김지하.김수영씨 등이, 북에선 조기천.오영재.박세옥씨 등이 주로 언급된다. 조기천씨는 국내에도 잘 알려진 북한 가요 '휘파람'의 원작 시인이다.

"공화국의 시는 연애시라도 주체성에 기초한다고 봐야 합니다. 다만 1990년대 들어 서정적인 묘사나 감성적인 어휘 사용이 두드러지긴 했지요. 남조선에선 70년대 작품이 지금보다 나은 것 같습디다."

그는 북한이 외국인에 대한 입국제한을 완화한 첫해인 74년 조총련 공연단인 금강산가극단과 함께 북한 땅을 밟았다. 이후 거의 해마다 평양에 가 북한의 문단 인사들과 교분을 쌓았다.

96년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만큼 북한에선 인지도가 높지만 국내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이번이 첫 방한이냐고 묻자 "사실은 두번째"라고 했다. "2003년 홍창수(조총련계 권투선수)의 방한 경기 때 조총련 단체 응원단에 끼어들어왔습니다. 하지만 통제가 심해서 경기장 말고는 꼼짝도 못했어요."

이번엔 숭실대가 주관하는 학술세미나에 초청받아 왔다. 17.18일 세미나를 마치고 19일 일본으로 돌아간다.

"지난 며칠 간은 임헌영 교수(중앙대)가 서울 관광을 시켜줬지요. 기억에 남는 거요? 탑골공원에서 3.1 운동 벽화를 봤을 때랑 서대문형무소에 들렀을 땐 참 감개무량합디다. 일제 시대의 아픈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나는 것 같았거든."

그의 선친은 경남 함안의 선산에 묻혀있다. 작은 어머니 등 친척도 인근에 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개인적인 이유로 일정에 차질을 주기 싫어 내려가보진 못했다고.

"북남 관계가 꼬여서 걱정입니다. 남북작가회의 일정에 지장이 없어야 하는데(회의는 이르면 4월께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다)…. 언젠가 남북작가회의가 열리면 기자 양반 꼭 평양에 오십시오. 환영 준비 마쳐놓고 기다리고 있을테니…."

글=손민호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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