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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FTA협상 중단되면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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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3개월째 표류하고 있다. 양국 정부는 지난해 11월 이후 추후협상 일정조차 잡지 못한 채 장외 공방전에 골몰하는 양상이다.

한국은 일본 정부를 탓하고 있다. 비공식 협의에서 농수산품 시장의 50%만 개방하겠다고 고집한다는 것이다. 이는 '실질적이고 높은 수준의 자유화'라는 FTA 원칙에 못 미치는 턱없이 낮은 수치다. 반면 일본은 "한국이 공산품 수입증가에 따른 우려 때문에 양허안 교환을 거부하고 있다"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대북 경제제재까지 검토 중인 마당에 개성공단 제품도 한국산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일본은 먼저 한국의 어려운 입장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 한국은 단기적인 손해를 각오하고 협상을 벌이고 있다. 한국의 평균 수입관세율은 일본보다 3배가량 높다. 당연히 FTA 과실은 일본이 더 많이 챙기고, 대일 무역적자도 14억달러나 늘어나게 된다. 특히 한국의 자동차.기계부품.소재 분야 기업들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일본 기업과의 무한경쟁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는 좀 더 당당히 국내 기업을 설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난 40년간 폐쇄적인 보호정책을 폈지만 부품산업은 여전히 취약하다. 국내 부품산업 경쟁력은 일본은 물론 관세가 훨씬 낮은 홍콩이나 대만에도 못 미친다. 중장기적 안목에서 과감한 개방을 통한 구조조정과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필요한 대목이다.

한.일 FTA 협상에는 공산품 교역과 기술이전 등 양국 경제의 장래를 결정할 굵직한 내용이 많다. 농수산물 분야에 걸려 좌초돼서는 안 된다. 이번 협상은 한.일 양국의 경제규모에 걸맞은 본격적인 첫 FTA 협상이다. 또 한.중.일 3개국 FTA로 건너가는 징검다리이기도 하다. 이미 동아시아권의 무역비중은 유럽연합(EU)이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지대에 육박하고 있다. 길게 내다보며 마음을 터놓고 만난다면 한.일 양국이 협상접점을 찾는 게 어렵지마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