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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G20 성공과 외교부 개혁 고민하다 낙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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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호 07면

“김성환(사진) 내정자는 외교관으로서 쌓아온 역량과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우방과의 협조유대 관계를 지속적으로 증진시킬 적임자다. 또 최근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한편 외교부를 공정사회 가치관에 맞게 전면 쇄신해 국민의 신뢰를 받게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 지명 막전막후

이명박 대통령이 2일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요청서를 국회에 제출하면서 밝힌 사유다. 김 후보자에 대한 국회의 인사청문회는 이르면 오는 7일 열린다. 인사청문 요청서를 보낸 지 닷새 만이다. 국회가 이처럼 신속하게 인사청문회를 하게 된 건 한나라당이 다음 달 11~12일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감안, 주무 장관인 외교부 장관의 청문회를 조기 개최하자고 요구한 데 대해 민주당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여야의 이례적인 ‘속도전’은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G20. 다른 하나는 이 대통령이 청문요청서에서 밝힌 것처럼 ‘외교부에 대한 전면 쇄신과 국민의 신뢰’다. 이 두 가지는 지난달 4일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 특혜 채용 사건으로 불명예 퇴진한 이후 후임자 결정을 놓고 청와대가 고민해온 핵심 가치다.

청와대 관계자는 2일 “유 전 장관 사건이 아니더라도 김성환 외교안보 수석은 G20 정상회의 이후 단행될 외교안보 부처 개각에서 장관으로 승진할 확률이 90% 이상이라고 할 정도로 대세였다”고 말했다. 8·8개각 이후 청와대 안팎에선 연말께 있을 외교안보라인 개편 때 외교부 장관 영순위는 김성환 수석이란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그 정도로 김 수석이 2년2개월간 이명박 대통령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면서 신임을 얻었다는 얘기다. 그는 33년간 요직을 두루 거친 전문 외교관,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른바 ‘안티(반대)세력’도 거의 없는 편이다.

김 후보자의 장관 기용이 예정보다 당겨진 것은 유명환 전 장관 딸 특채 파문 때문이다. 이와 함께 지난 수년간 외교부가 해온 특채 비리가 불거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는 사안으로 발전했다. 공교롭게도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 사회’를 역설한 시점이었다. 당시 청와대에 파견된 외교부 인사는 “외교부 장관 딸 특채 사건은 주제도 시점도 최악이다. 대통령의 외교부에 대한 이미지가 가뜩이나 좋지 않았는데 이를 불식시킬 만하니까 대형 악재가 터졌다”고 했다. 여론은 외교부의 편법 특채 비난으로 들끓었다. ‘반이명박(antimb)’ 타이틀을 내건 네티즌들은 우스꽝스러운 패러디 영상물을 만들어 인터넷에 올렸다.

여론이 악화되자 류우익 주중 대사 카드가 후임 장관 인선 테이블에 올라왔다. 청와대의 수석 몇몇이 이 안을 올렸다. ‘내부 출신 인사로는 외교부의 개혁을 제대로 할 수 없고,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실망감을 줄 것이기 때문에 조직을 강력하게 장악해 개혁의 칼을 휘두를 수 있는 외부 인사여야 한다’는 논리였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초대 대통령 실장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을 읽으면서 외교부 조직을 쇄신할 수 있는 데다, 세계지리학회 사무총장을 지내면서 익힌 외교적 감각을 십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외부의 외교부에 대한 채찍질이 한참이던 때라 외교부 내에서 류 대사를 반기는 여론도 있었다. 외교부가 환골탈태하고 외교적 수요에 맞는 강한 외교부가 되려면 힘있는 인사가 와야 한다는 논리였다. 외교부의 한 고위급 인사는 “우리끼리 과감한 개혁을 한다 해도 국민들이 곱게 봐줄지도 의문이다. 외교부를 개혁하면서도 외교부의 실정을 정확히 보고 제대로 된 외교력을 갖추도록 조직을 강화해 줄 수 있는 외부인사가 필요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워싱턴스쿨·재팬스쿨이 장악해온 인사 파행·독점을 이 참에 깨야 하는데 외교부 내 이른바 ‘주류’인 김성환 수석이 깨기 힘들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런 기류 속에서도 김성환 수석의 장관 기용 가능성이 인사 테이블에서 내려온 적은 없었다고 한다. ‘상수’로 검토됐다는 얘기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성환·류우익 두 사람을 놓고 얘기했지만, G20을 이 시점에서 원만하게 치러낼 사람은 김 수석이란 공감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교부의 특채 비리 감사를 진행해온 행정안전부의 맹형규 장관이 지난주 초 이명박 대통령에게 중간 감사 결과를 보고하면서 상황이 바뀌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대두되기도 했다. 유명환 장관 자진사퇴 이후 언론과 정치권에서 제기한 의혹 대부분이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1일 행안부 발표에서 보듯 영어 성적에 미달하는 사람, 서류 전형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특채로 합격했고 이른바 ‘로열 패밀리’에게 연수와 전직 등의 특혜를 준 것이 확인됐다. 청와대 소식통은 “이명박 대통령이 보고를 받고 실망감을 표출했고, 이 때문에 외부 인사에 의한 외교부 개혁에 힘이 실릴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고 전했다.

류우익에 대한 야권의 정치공세 부담도,/b>
여권 인사는 “류우익 대사 카드가 좌절된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여건”이라고 했다. 류 대사가 이명박 대통령의 출범 첫 대통령실장을 역임한 핵심 측근이라는 상징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G20 정상회의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야당이 청문회 일정에 합의하지 않거나, 합의해 놓고도 흠집내기로 일관할 경우 G20 개최에도 누가 될 것이란 판단도 작용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여권 내부에서도 “굳이 류 대사 카드로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다. 김성환 수석에게 외교부 개혁을 확실하게 맡기면 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고 한다. 한 외교 소식통은 “G20은 사실상 지식경제부와 사공일 G20 준비위원장 중심이어서 인선의 핵심 요소는 아닐 수 있다”고 했다. 정치적 이유가 컸다는 얘기다.

이 대통령이 류 대사 카드를 들지 않은 것은 최근 한반도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설명도 나온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남 정은에게 권력을 승계하는 등 북한 정세의 가변성이 커진 상태에서 주중 대사를 교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이 천안함 사건 이후 자국 이익의 극대화 차원에서 주중 대사의 입지를 좁게 한 측면도 있지만, 이 대통령과 직접 통할 수 있는 류 대사를 의식하고, 존중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라며 “대통령 입장에서도 급변기에 핵심 국가인 중국 대사로 류 대사만큼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은 찾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이 대통령이 류 대사에게 남북 관계 등 한반도 상황 개선을 위해 모종의 역할을 맡길 것이란 얘기도 있다.

청와대가 김성환 수석에 대한 장관 후보자 모의 청문회를 한 건 1일 새벽이다. 임태희 대통령실장과 백용호 정책실장·정진석 정무·권재진 민정·홍상표 홍보수석이 참석했다. 이에 앞서 임 실장과 정진석, 권재진 수석·맹형규 행안부 장관 등 4명이 지난달 29일 이 대통령을 만나 외교부 비리 문제와 김성환 수석에 대한 검증 문제 등을 종합 보고했다. 권재진 수석은 이 자리에서 “김성환 수석이 내부 (약식) 청문회를 해보지 않아도 될 만큼 문제가 없다”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증문제에도 큰 하자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면서 이 대통령이 29일 김 수석의 장관 기용을 최종 결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성환 후보자는 2일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서 본인과 배우자, 장·차녀 명의 재산으로 모두 7억6316만원을 신고했다. 올해 4월 공직자 재산변동신고 때의 8억5248만원보다 8932만원 줄어든 것이다. 김 후보자의 재산 내역은 ▶서울 종로구 구기동 다세대주택(3억8400만원) ▶은행예금 1억6283만원 ▶유가증권 1249만원 ▶경기도 남양주시 임야 375만원 등이고 금융기관 채무는 1억2500만원이었다. 배우자 재산은 ▶예금 2억4876만원 ▶자동차 1844만원 ▶동양화 500만원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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