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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보는 세상] 娘子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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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617년 5월 당시 지방 군벌이던 당(唐)고조 이연(李淵)이 변경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수(隋)나라 군대는 곧 장안(長安)에 머물던 그의 셋째 딸 평양(平陽)공주와 남편 시소(柴紹)의 체포에 나섰다. 급히 탈출하려던 시소는 “함께 가기는 어렵다. 어떡하면 좋겠는가?”라며 머뭇거린다. 평양공주는 주저 없이 “나는 여자이니 숨기 쉽다. 혼자 가라”며 그를 안심시켰다. 남편을 보낸 그녀도 장안을 빠져 나와 이씨의 장원(莊園)에 몸을 숨겼다. 남장을 하고 재산을 처분한 그녀는 토비들을 규합해 군대를 조직했다. 9월 이연의 주력부대가 황하를 건너 관중으로 들어왔다. 평양공주는 1만여 정예병사를 모아 선발대로 온 남편과 해후한 뒤 함께 장안을 점령해 수나라를 멸망시켰다. ‘낭자군(娘子軍)’의 효시는 바로 평양공주가 이끌던 군대의 명칭이다.

『신당서(新唐書)』 동이전에는 고구려 여자들이 건괵(巾幗)이란 헝겊 장식을 머리에 맸다는 기록이 나온다. 『삼국연의』에는 유비 사후 북벌에 나선 제갈량이 상대인 사마의가 싸움에 응하지 않자 그에게 여자들이 쓰는 건괵을 보내 화를 돋우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까지 여자의 장식물이던 건괵은 이후 여걸(女傑)의 대명사로 바뀐다. 미국 디즈니사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유명세를 탄 뮬란이 대표적인 건괵영웅(巾幗英雄)이다. 병든 아버지를 대신해 남장을 하고 전쟁터에 나가 혁혁한 전공을 세운 화목란(花木蘭)이 실제 주인공이다. 남송(南宋)시대에는 목계영(穆桂英)이라는 걸출한 여장부가 등장한다. 무예와 지략, 용기까지 겸비한 목계영은 집안의 며느리들을 이끌고 서하(西夏)와의 전투에서 큰 무공을 남겼다. 그녀는 이후 경극의 주인공으로 부활해 민간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한편 여성의 드높은 기세는 ‘하동사후(河東獅吼)’라고 했다. 송(宋)의 대문호 소동파(蘇東坡)가 함께 술로 밤을 지새다 사자의 울부짖음 같은 부인의 목소리에 혼비백산하는 공처가 친구를 그린 시에서 나온 말이다.

건괵을 매던 고구려의 후예 대한민국 낭자군의 활약이 눈부시다. 우승컵을 들고 금의환향한 17세 이하 여자월드컵 대표팀이 청와대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고 한다. 워낙 여풍(女風)이 거세기에 이대로 간다면 ‘자웅(雌雄)을 겨루다’는 말은 곧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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