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의 중심에서 한국을 느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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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韓流)의 중심에서 한국을 느낀다'고 외치는 한 일본 여성이 있다. 지난해 히트했던 일본 영화 '세계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자신의 상황에 맞게 비유한 표현이 절묘하다.

화제의 주인공은 강원도 양양군청에서 근무하고 있는 누마오 마키코(45·사진)씨. 양양군과 국제 교류를 맺고 있는 일본 아오모리현의 록카쇼무라에서 교환 공무원으로 파견돼 3년째 한국생활을 하고 있다.

▶양양군청에서 교환공무원으로 파견 근무하고 있는 누마오 마키코씨.

강원도는 드라마 '가을동화' '겨울연가' 등의 촬영지로 일본인들에게는 한류의 중심지로 비쳐지는 곳이다. 게다가 양양은 아오모리현처럼 눈이 많고, 연어로 유명하다는 공통점이 있어 이 곳에 오기 전부터 푸근함을 느꼈다고 한다.

마키코씨가 양양에 파견근무 온 것은 지난 2003년 5월. 일본에서 '겨울연가'가 방영되며 한류붐이 막 달아오르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는 원래 1년간 근무하고 돌아갈 계획이었지만, 지난해 연장근무 신청을 했다.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더 많이 배우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에 왔을 때 그가 할 수 있었던 한국어는 '안뇽하세요' '감사하무니다' 등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유창하진 않지만, 업무에 필요한 대화와 일상 회화 등은 가능한 수준이 됐다. 이제는 '감사합니다'를 제대로 발음할 수 있다고 자랑할 정도다.

"한국말은 정말로 귀여워요. 감정을 느낀 대로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습니다" 라며 두 손을 가슴에 포개어 활짝 웃는다.

마키코씨는 지난해 연말 휴가차 고향에 갔을 때 일본에서의 뜨거운 한류 붐을 실감했다. 친구들과 만나면 항상 한국 드라마나 한류 붐이 대화 소재가 되고, 한국에 놀러 가도 되냐 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또 '겨울연가 촬영지에서 가까운 곳에 근무하니 얼마나 좋으냐'는 말도 수없이 들었다고 한다. 나중에 놀러 갈테니 연장근무를 신청하라고 독촉하는 친구도 있었다.

친구들이 보낸 연하장 내용도 '요즘 한국 드라마에 푹 빠져 지낸다'는 내용 일색이고, 한국 드라마의 영향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주부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고 한다.

"예전에는 한국 드라마는 커녕 한국에 대해서조차 얘기를 꺼내는 사람이 없었는데 불과 1년 사이에 한국 드라마가 일본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가 됐어요. 덕분에 저도 고향에 가면 스타 대접을 받는답니다."

실제로 마키코씨의 가이드를 받아 양양, 서울 등 한국 관광을 다녀간 친구들이 벌써 10명을 넘어섰다. 휴가 때 고향에 갈 때는 선물용으로 한국 드라마나 영화 DVD와 주제가 CD를 사간다. 한국 라면, 김치, 식혜, 김 등도 고향 사람들이 좋아하는 선물 목록이다.

최근에는 '발리에서 생긴 일' '파리의 연인' '대장금' 등 일본에서 방송되고 있는 한국 드라마들의 줄거리나 결말을 물어보는 친구들의 이메일이 쇄도한다.

"한국 드라마를 계기로 일본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이 가장 의미있는 것 같아요. 한국 드라마를 보며 삶의 활력을 되찾았다는 주부들도 많아요. 그런 한류의 중심지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몰라요."

그러나 마키코씨는 요즘 한국 드라마가 다소 신선미(新鮮味)가 떨어지고 있다는 따끔한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한국 드라마들은 내용이 비슷한 것들이 많아요. 주인공의 출생의 비밀, 교통사고, 유학, 삼각관계 등은 늘 등장하는 소재에요. 한국 드라마를 자주 보다 보니 그런 것들이 잘 보이더라구요."

마키코씨는 오는 3월말 한번 연장한 교환 근무기간이 끝나지만, 가능하면 또 한번 연장근무를 신청하고 싶다고 한다.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완전히 마스터한 뒤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당찬 각오다.

양양=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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