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역사의 새 장이 열렸다. 무명 지도자의 헌신과 어린 선수들의 열정이 열악한 여자 축구를 남자보다 먼저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 결승에 올려놨다.
한국 선수들이 22일(한국시간) 스페인과 준결승에서 1-1 동점골을 넣은 후 응원단을 향해 큰절을 올리는 골 뒤풀이를 하고 있다. [코우바(트리니다드토바고)=연합뉴스]
결승 상대는 숙적 일본이다. 한국은 준결승에서 북한을 2-1로 누른 일본과 26일 오전 7시 우승컵을 놓고 최후의 일전을 치른다. U-17팀이 거침없이 결승까지 오른 비결로 많은 축구인이 최덕주 감독의 지도력을 꼽는다. 지난해 4월 U-16 여자대표팀을 맡은 최 감독은 부임 7개월 뒤 U-16 아시아선수권대회(태국 방콕)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 대회 준결승에서 일본을 1-0으로 이겼다. 바로 그 팀과 1년 뒤 이번 대회 결승에서 다시 만나는 것이다.
최 감독은 그라운드에서 큰소리를 내는 법이 없다. 대신 선수들을 불러 아버지처럼 차분한 목소리로 차근차근 설명을 해 준다. ‘윽박질러 공포심 때문에 나오는 플레이는 창조적일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최 감독은 대표팀에 수비수를 딱 3명만 발탁했다. 대신 소속팀에서 공격수로 활약하던 신담영(동부고)·장슬기(충남인터넷고)·오다혜(포항여전)를 뽑아 수비를 맡게 했다. 신담영은 “솔직히 처음엔 (수비에 적응하지 못하는 우리가) 굉장히 답답하셨을 텐데, 감독님은 우리를 크게 나무라지 않으셨다. 그래서 좀 더 자신 있게 수비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스타 플레이어 출신도 아니고 화려한 경력을 갖춘 지도자도 아니다. 중앙대를 나와 한일은행-포항제철에서 공격수로 뛴 그는 1987년 일본으로 건너가 2년간 선수 생활을 했다. 90년부터 2004년까지 일본 고교·대학·성인 팀을 두루 거치며 지도자 경험을 쌓았고, 독일·브라질에서도 선진 기술과 코칭 이론을 배웠다.
최 감독은 “지금까지 경기들이 절대 쉽지 않았다. 선수들이 그런 경기를 하다 보니 힘든 상황을 헤쳐 나갈 힘이 생겼다”고 그간의 과정을 되짚었다. 그리고 “일본은 기본기가 탄탄하고 개인기도 뛰어나다. 하지만 일본은 자기들보다 강하게 밀어붙이면 한 수 접어주는 약점이 있다. 우리는 강하게 압박해 반드시 승리를 일궈 한국 축구사를 멋지게 장식하고 싶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온누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