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주의의 빛과 그늘(상)
“적금 타 주택자금 마련되면, 을랑이 엄마/내다버린 생각들을 다시 챙겨/메추리가 뒤란으로 기어드는 산골마을/곱게 널린 노을 아래로 가자/가서, 솔가지 지펴 저녁연기 올리며 살자/집 둘레엔 듬성듬성 탱자나무 심어 울을 치고/빨래가 재주넘는 나일론줄도 달아보지 않으련?”10여 년 전 신문에 소개된 시 하나를 수첩에 넣고 다녔다. 그러다 절로 외운 김영남의‘초향(草鄕)’은 널리 알려진 건 아니지만, 심금을 울리는 뭔가가 있다.
“눈 감으면 언제라도 맑은 하늘이 숨 쉬는 고향 개울가”이야기가 그렇고, “밤이면 새끼줄 같이 긴 시를 쓰면서/달빛 쫓겨 가는 새벽 냇가 풀숲에 염소를 풀어 놓는”시골생활 묘사가 그러하다. 사실 ‘꿈에 본 내 고향’ 등 숱한 옛 노래도 “나는야 흙에 살리라”고 굳세게 다짐해왔는데, 그건 우리의 본능이자 인지상정이다. 추석마다 펼쳐지는 민족 대이동도 그 때문이리라. 문제는 그런 소박한 생태주의와 달리 우리시대 유행 품목이자 정치화한 생태주의다. 그렇게 왜곡된 생태주의, 변질된 생태주의에는 어설픈 센티멘탈리즘은 물론 허위의식까지 숨어있다는 걸 발견한 게 최근의 일이다.
직접적 계기는 진화학자 매트 리들리의 『이성적 낙관주의자』를 접한 기분 좋은 충격이다. 그에 따르면 그동안 우리는 도시를 깎아 내리며 시골·자연을 치켜세우는 걸 지치지 않고 반복해왔다. 그게 근거 있을까? 산업혁명 이후 역사를 훑어보라. 도시는 엄연히 진취적 장소이자, 인간해방의 공간이었다. “인도 여성에게 왜 뭄바이로 가려는가를 물어보라. 도시는 위험하지만 자유롭고, 또 수많은 기회의 상징이다. 반면 고향 땅이란 임금 없는 노동과, 숨 막히는 간섭과 통제만이 있는 곳이다. 19세기 미국의 헨리 포드에게도 그러했다. 그가 훗날 자동차를 발명했던 건 ‘미국 중서부 시골의 끔찍한 권태로부터 탈출했기 때문’이다.”
정문일침에 정신이 번쩍 났다. 도시에 살면서 막연히 시골을 동경하던, 몸 따로 마음 따로의 이중구조를 바로 잡아준 것이다. 사실 산업혁명 이후 서구·비서구의 숱한 젊은이가 도시로, 도시로 빨려 들어갔던 건 그곳의 자유와 숱한 기회에 매료된 탓이다. 그 결과 2008년을 기점으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촌 인구의 절반이 도시에 살게 됐다는데, 이런 거대한 변화는 누가 시키거나 강요한 결과가 아니다. 막상 우리는 도시의 매력과 역할을 인정하는데 매우 인색했다.
조우석 <문화평론가>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