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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질 검증? 단체장 길들이기? … 지방권력 충돌 2라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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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방자치단체들이 인사청문회 도입을 위해 내세우는 명분은 공직자 자질검증이다. 자치단체 산하 기관장들과 정무직 공직자들이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데도 단체장이 검증을 하지 않고 자기 사람 심기에 열을 올리고 있어 이를 제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의회 권력이 자치단체 권력을 길들이려고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서울 등 7개 지자체는 어떤 형태든 청문회 도입이 필요하다는 데는 인식을 같이한다. 그러나 그 도입 방법과 청문회 대상자에 대해서는 지역별로 차이가 있다.

지방선거 이후 가장 먼저 청문회 도입을 추진 중인 서울시의회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반드시 청문회를 관철한다는 방침이다. 당장 지난달 31일 취임한 서울메트로 김익환 사장부터 검증할 채비를 하고 있다. 김명수(민주당) 서울시의회 운영위원장은 “시장의 인사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인사청문회 도입안을 마련 중”이라며 “오세훈 서울시장이 조례 제정을 거부할 경우 상임위나 특별위원회를 통해서라도 사실상의 청문회를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울산시의회 이재현(민노당) 부의장도 “도덕성과 능력을 확인하자는 것이지 인사권을 침해할 생각은 없다”고 그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나 “시장이 반대할 경우 중앙당과 상의해 상위법을 바꿔서라도 인사청문회 관련 조례를 관철시키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광주광역시의회는 양동작전을 펴고 있다. 상위법 개정과 현행 법 테두리 내의 검증 방안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윤봉근(민주당) 광주시의회 의장은 지난달 19일 천안에서 열린 시·도의회 의장단 협의회에서 “16개 시·도의회 의장단 공동명의로 국회와 정부에 공기업법 개정을 요구하자”고 제안했다. 지방공기업법에 ‘임명 예정인 지방공기업 사장 후보자에 대해 의회에서 인사청문회를 해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하자는 내용이다. 28~29일로 예정된 시·도의회의장단 협의회에서 이를 공식안건으로 채택한다는 계획이다.

광주시의회는 지방공기업법 개정에 앞서 신임 지방공기업 사장을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 중이다. 행정자치위나 산업건설위에 후보자를 출석시켜 자질을 검증, 청문회와 비슷한 효과를 내는 방식이다.

경기도의회는 10일 이미 정례회에서 김문수 지사와 김상곤 교육감에게 인사청문회 도입을 공식 제안했다. 고영인 민주당 대표의원(도의회 원내대표 격)은 “조만간 대학교수 등 전문가들로 팀을 구성해 추진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각 시·도의회가 꼽고 있는 청문회 대상에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

광주광역시는 일단 시에서 투자한 공기업 대표들만 겨냥하고 있다. 서울은 여기에다 세종문화회관 관장,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등 출연기관·재단까지 포함한 21개 기관장을 모두 검증하겠다는 계획이다. 울산의 경우 당장은 도시공사·시설관리공단·테크노파크 등 6개 공기업·출연기관장부터 실시하되, 추후에 정무부시장과 개방직인 복지여성국장·교통건설국장까지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경기·인천·경남은 아직 대상자 범위를 정하지 못했다.

인사청문회의 도입 과정에서 지방의회와 시·도지사 간의 갈등도 우려된다. 의회의 인사청문회 추진 주체가 대부분 시·도지사와 소속당이 달라 완충지대가 넓지 않기 때문이다.

시·도지사가 한나라당 소속인 서울·경기의 경우 추진 주체가 시의회 다수를 점하고 있는 민주당 시의원들이다. 서울시의회는 교육의원을 제외한 106명 가운데 민주당 소속이 79명으로 재적의원의 3분의2를 넘는다. 경기도 역시 민주당이 75명이고 한나라당은 42명이다. 무소속 도지사인 경남은 한나라당 소속 도의원이 70%(37명)다. 한나라당 소속 시장인 울산은 민노당 시의원들이 추진하고 있다. 이들은 당소속 시의원의 32%(7명)에 그치고 있지만 과거(21%)보다 발언권은 세다. 광주·인천만 시장과 추진세력이 같은 당 소속이다.

서울시의 이종현 대변인은 “산하기관장은 공개모집을 통해 전문 경영인을 뽑도록 돼 있고, 헤드헌터의 도움을 받는 등 별도의 검증 절차를 거치고 있다”며 “법에 명시된 시장의 인사권을 침해하는 인사청문회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다른 시·도 단체장들도 같은 입장이다. 익명을 원한 지방의 한 자치단체장은 “청문회 도입은 명백히 단체장을 길들이려고 하는 의회의 저의가 반영된 것이며 반드시 저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기원·유지호 기자,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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