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의 현장 보승식품은 족발 전문 회사다. 전국 110여 개 신세계이마트 점포에 족발·순대·보쌈 등을 납품한다. 지난해에만 연 3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이 회사는 1990년대 초만 해도 서울 수색동에서 운영하는 작은 족발집에 지나지 않았다. 어느 날 가게에 들른 신세계 직원들의 추천으로 이마트에 납품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형마트의 납품 기준을 만족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정의채(55) 보승식품 사장은 “깨끗하게 만든 족발을 넘겨야 한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알기 어려웠다”며 “위생 기준이 까다로워 납품을 하지 말까 고민했던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그러자 이마트에서 족발을 위생적으로 유통할 수 있는 진공포장 기술을 가르쳐줬다. 덕분에 좀 더 쉽게 이마트에 납품할 수 있게 됐을 뿐 아니라 방부제 없이도 1~3일이던 족발의 유통기한을 30일까지 늘릴 수 있게 됐다.
STX엔진 직원(오른쪽)이 협력사를 찾아 애로사항을 듣고 있다. STX그룹은 80여 곳의 우수 협력사에 대해 관리 프로그램을 시행한다. [STX 제공]
하지만 대기업에서 기술을 지원해 준다거나 연구개발(R&D) 분야에서 협력을 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협력사의 기초 경쟁력을 키워주는 지원책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친환경 경영을 돕는 지원책으로까지 진화했다. 고기를 잡아 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진정한 상생이라는 원칙에서 나온 상생 협력책이다.
STX그룹도 기술 지원에 앞장선다. STX조선해양은 올 7월 협력사 대표가 모인 가운데 기술 개발이 필요한 품목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다. 이를 통해 향후에 협력사의 기술 개발을 돕는다는 계획이다. 또한 선주가 부품 제조사를 선택하는 업계 관행상 중소 협력사가 개발한 신제품을 선정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영업활동까지 지원해 준다.
현대중공업은 기술교육원에서 협력사 직원을 위해 기술을 가르쳐 준다. 교육받는 동안 수당·숙식을 무료로 제공한다. 교육과정 수료 후 미국 선급협회(ABS) 인증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특전도 준다. AS(사후 서비스)도 마련했다. 담당 교사가 교육을 수료하고 취업한 이들을 방문해 애로사항을 듣고 컨설팅을 해 준다. 하이닉스반도체는 기술을 지원해 줄 뿐 아니라 협력사가 특허를 낼 수 있도록 돕는다.
현대백화점은 ‘지식 나누기’란 이름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협력사 직원을 위해 연 30회 마케팅·위생 등을 교육한다. 이뿐만 아니라 협력사 우수 직원에게는 해외 연수 비용을 지원한다.
◆‘친환경·문화’로 상생=애경은 협력사와 ‘탄소 파트너십’을 맺고 친환경 경영 컨설팅을 해 준다. 원료·포장재 등 생산 공정에서 중소 협력사가 재활용 생산 비율을 높여 원가를 절감하고 이산화탄소 배출은 줄일 수 있도록 컨설팅해 주는 것이다.
신세계는 협력사의 에너지 사용 실태를 진단해 준다. 협력사가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도록 돕기 위해서다. 2008년 7월부터 올 상반기까지 60여 개 협력사에 에너지 진단을 실시해 총 30억원의 에너지 비용을 줄일 수 있게 했다. 협력사에 ‘문화 상생’으로 다가가는 곳도 있다. 현대백화점은 백화점에서 여는 각종 문화행사에 협력사 임직원을 초청한다. 15일 예술의전당에서 진행한 런던필하모닉오케스트라·사라장 연주회에도 협력사 임직원 50여 명을 초청했다. 현대중공업은 점심 시간에 협력사를 방문해 클래식 콘서트를 여는 행사를 진행한다.
김기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