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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딱 하나밖에 없는 예·술·자·동·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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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모건의 수작업 차

네덜란드의 반덴브링크, 영국의 모건, 독일의 비에스만. 우리에겐 낯선 자동차 업체들이다. 이른바 ‘코치빌더(Coachbuilder)’라고 불리는 소규모 주문생산 업체다. 나라마다 명칭은 제각각이다. 영국은 백야드 빌더, 이탈리아는 카로체리아, 독일은 카로세리에다. 이 가운데 백야드 빌더는 뒷마당에서 손수 차를 만드는 이를 의미한다. 나머진 각자의 언어로 마차 제작자를 뜻한다.

사전적 의미처럼 코치빌더는 마차를 맞춤 제작하던 장인을 일컬었다. 마차의 시대가 저물면서 제품을 자동차로 바꿨을 뿐이다. 수요층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레이서나 유명 배우, 왕족이 주고객이었다. 당시 차를 만드는 과정은 지금보다 복잡했다. 시간도 훨씬 오래 걸렸다. 몇 가지 뼈대를 밑그림 삼아 엔진을 넣고, 껍데기를 씌웠다.

그러나 자동차 대량생산의 보편화로 코치빌더의 설 자리는 나날이 좁아지고 있다. 코치빌더의 차는 가격이 비쌀 뿐 아니라 제작에 워낙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품질이 엉성한 경우도 있다. 차체가 일체형으로 바뀌면서 작업에 쓸 뼈대도 귀해졌다. 설상가상으로 양산차 업체 또한 맞춤제작에 뛰어들었다. 이 때문에 많은 코치빌더가 문을 닫거나 업종을 바꿨다.

피닌파리나, 베르토네, 자가토 등 이탈리아의 카로체리아는 한때 저만의 차를 생산했다. 그러나 자동차 업계가 양산차 위주로 재편돼 자동차 생산보다는 외주 디자인에 더 열심이다. 100년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의 코치빌더 카만은 이제 전동식 하드톱 개발·생산으로 전공을 바꿨다. 영국의 뮬리너는 벤틀리의 인테리어로 사업을 특화시켰다.

그렇다고 코치빌더의 시대가 완전히 막을 내린 건 아니다. 개성 넘치는 자동차를 원하는 수요가 여전한 까닭이다. 자동차를 예술품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희귀모델에 선뜻 거금을 내놓는다. 얼마 남지 않은 코치빌더들은 이런 틈새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나아가 양산차와 차별화된 매력을 갖춰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가령 엄격한 법적 요구를 충족시킨 양산차에서는 엔진과 변속기 같은 부품을 갖다 쓴다. 신뢰성과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여기에 과감한 디자인을 쓰고,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성능을 담는다. 인테리어는 디자인부터 소재까지 철저한 주문제작 방식으로 꾸민다. 양산차의 획일화된 내용에 갈증과 염증을 느낀 고객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기 위해서다.

소량, 수작업으로 생산된 이들 작품은 자동차 애호가에게 수집대상으로도 인기를 끈다. 차별화된 디자인과 섬세한 기술, 뛰어난 성능 때문이다. 게다가 주문제작 방식이어서 매번 태어나는 차의 내용엔 차이가 난다. 따라서 오너는 세상을 통틀어 한 대뿐인, 나만의 차를 소유하는 희열을 맛볼 수 있다. 희소성이 빼어난 만큼 가격은 입이 떡 벌어지게 비싸다.

반덴브링크 디자인은 오늘날 맹활약 중인 코치빌더 가운데 하나다. 지난 2006년 네덜란드에서 설립됐다. 사업영역은 자동차 디자인과 생산, 단독생산 또는 한정생산, 자동차 위탁 디자인, 공기역학 분석, 실물 크기의 3D 모델 제작까지 아우른다. 특히 과거 명차의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거나, 현재의 차에 과거의 디자인을 접목하면서 유명세를 치렀다.

영국의 모건은 올해로 창업 101주년을 맞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코치빌더. 물푸레나무로 짠 프레임에 알루미늄 패널을 씌우는 제작방식을 고집한다. 크롬링을 두른 계기판과 가죽벨트를 채운 보닛이 아련한 향수를 자극한다. 모건의 최신작인 에어로8은 BMW의 V8 4.8L 엔진을 얹고, 시속 0→100㎞ 가속은 4.2초, 최고시속 273㎞의 성능을 낸다.

독일 비에스만 MF3 로드스터

1985년 독일에서 설립된 비에스만은 과거와 현재의 조화를 꿈꾼다. 클래식한 멋은 매끄러운 곡선과 풍만한 볼륨을 살린 겉모습까지다. 계기판엔 다양한 정보를 띄울 액정화면(LCD) 패널을 심었다. 스티어링휠(핸들)엔 손가락만 튕겨 기어를 바꿀 수 있는 패들 시프트도 달았다. 올드카를 창의적으로 재해석한 반덴브링크나, 과거로의 회귀를 꿈꾸는 모건과 또 다른 전략이다.

비에스만의 최신작 GT MF5는 BMW M5의 엔진과 변속기를 얹었다. 차체의 높이는 불과 1170mm. 로고 속의 도마뱀처럼 도로에 납작하게 붙어 있는 모습이다. 시속 0→100㎞ 가속은 3.9초. 최고시속은 310㎞다. 실내는 입맛대로 꾸밀 수 있다. 우유부단한 오너에게 이 과정은 고통스러울 수 있다. 고를 수 있는 가죽의 컬러만 400가지 이상이기 때문이다.

김기범 중앙SUNDAY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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