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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신산을 찾아 동쪽으로 향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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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신산을 찾아 동쪽으로 향하네
옌안성 지음, 한영혜 옮김,
일조각, 376쪽, 1만5000원

"내 마음 큐피드의 화살 피할 길 없는데."

근대화에 뒤진 근대 중국지식인들의 고뇌가 담긴 시구다. 근대화에 앞선 일본에 대한 부러움, 중국 중심 세계관의 종말이 가져온 자괴감, 청조를 뒤엎고 신국가를 건설하고 싶은 열정, 출세를 향한 개인적 야망이 뒤엉켜 중국지식인들은 괴로워했다. 이런 점에 주목해 저자 옌안성은 중국의 문호 루쉰(魯迅)과 궈모뤄(郭沫若) 등 일본유학생들의 내면세계를 복원했다. 차갑고 딱딱한 분석이 아니라 일기, 편지, 회상에서 채집한 에피소드를 모은 부드러운 서술 방식이 눈길을 끈다.

중국의 일본유학생은 신해혁명(1910)을 기준으로 두 시기로 나뉜다. 제1 세대가 곧 일본을 따라잡아 근대화를 달성하리란 꿈에 부풀어 있었다면 제2세대는 절망하고 고뇌하는 지식인상이었다. 다이쇼 민주주의를 표방한 일본은 제국주의 강대국으로 부상해 중국이 추격할 상대가 아니었다. 그 점이 제2세대에게 두통거리였다.

저자는 제1 세대에 좀더 마음이 끌리는 모양이다. 현대 중국은 경제대국의 꿈에 부풀어 제1 세대와 공통되는 점이 많다. 게다가 청년시절 사회주의 신국가 이상의 세례를 받은 저자는 제1 세대 유학생 루쉰이 일본 유학시절 신중국 창조의 이상을 담아 놓은 시구를 애송할 만큼 신국가 건설에 매료됐다. 중국은 지금 세계 각국에 유례없이 많은 유학생을 보낸다. 중국 근대화는 보랏빛 현재진행형이며, 저자는 그런 맥락에서 제1 세대 유학생의 내면에 특히 주목한 것 같다.

중국인들이 일본 유학을 떠난 것은 최초의 미국유학생이 태평양을 건넌 지 20년쯤 지난 청일전쟁(1894) 직후였다. 오랫동안 자국을 문명의 중심으로 믿었던 중국으로선 유학의 필요성을 인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청일전쟁의 패배로 유신변법은 중국사회의 화두가 됐으며 지식인들은 결국 일본에서 답을 구했다. 아무래도 같은 문화권에 속한 일본을 통해 서양을 배우기가 더욱 수월하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일본 유학 붐은 1930년대까지 계속돼 10만 명이 다녀왔다. 위안스카이의 제정복고를 좌절시킨 차이어, 반청 언론인 장빙린 등 중국 근대화의 기수 중엔 일본 유학생출신이 많았다. 일본 유학은 중국사회를 바꾼 혁명가와 지도자를 길렀고 그들을 네트워크로 묶는 구실을 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컸다. 유학생들은 일본에서 '화흥회'와 '광복회'를 비롯해 많은 조직을 결성했다. 그 인맥은 좌우익 양편에서 격동기 중국사회를 이끌어간 숱한 파벌의 온상이었다.

일본 유학의 지적 열매는 학교수업이 아니라 개인적 독서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루쉰은 심지어 헝가리, 핀란드, 폴란드 등지의 문학까지도 섭렵했다. 궈모러의 경우도 비슷했다. 뒷날 그들이 중국 문화계에 근대적 토양을 이식할 수 있게 된 것은 순전히 유학시절의 독서 덕분이었다. 일본의 발달된 번역문화는 자국은 물론 중국까지 변화시켰다고 호평할 만하다.

중국인 학생들이 일본에서 겪은 문화충돌도 신선한 느낌을 준다. 다다미를 방바닥으로 간주해 고국에서 늘 하던 대로 가래침을 뱉었다가 일본인들의 비웃음을 산 경우도 그렇지만 남녀혼탕에 기겁한 중국인의 모습에서 저자의 예리한 눈길을 읽는다. 중국인 유학생들은 일본을 배우려고 갔으나, 막상 그들의 현지 체험은 일본에 대한 반감 또는 거부감을 키우기도 했다는 것이다. 유학생 양두 같은 이는 고분학원 원장 가노 지고로가 일본이 중국 교육을 대신 일으켜 준다고 주장하자 큰 충격을 받았다. 양두는 그것은 노예교육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요컨대 일본 문화에 대한 중국인들의 반응은 이율배반적인 면이 있었다. 거기엔 중화의식의 잔재가 작용했을 수도 있지만 유학생출신에서 반일운동의 선구자가 많이 나온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일본으로선 차마 웃지 못 할 비극이었다.

우리 나라는 중국보다 일본유학을 먼저 시작했고 더욱 열심이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현해탄을 오가던 수많은 한국인 유학생들의 정열과 고뇌가 자꾸 오버랩 된다. 그 처지가 중국인유학생들과 꽤 비슷하면서도 또 적지 아니 달랐을 한국인 유학생에 관한 연구가 기다려진다. 한국 경우에도 유학은 한낱 개인사가 아니었겠기 때문이다.

백승종(푸른역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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