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번역가 ②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스타로 만든 이세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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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이세욱씨는 “모두가 피로 그린 것”이란 피카소의 말로 자신의 모든 번역작품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나타냈다. [김경빈 기자]

1993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로 대중에 이름을 알린 번역가 이세욱(48). 문학, 특히 프랑스 문학을 맛깔스런 우리말로 옮기는 그의 솜씨는 정평이 났다. 베르베르의 신작 『파라다이스』를 다른 이가 번역한 이유를 두고 인터넷에서 설왕설래했을 정도다.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안나 가발다 등이 국내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게 된 것도 그의 힘이다. 국내에선 드물게 판매부수에 따라 인세를 받는 몇 안 되는 번역가다.

이씨는 자신이 행운아라고 여긴다. “일감이 끊이지 않았던 거나 문학 번역자로 이름을 얻은 것이 모두 주위의 도움이 컸거든요.”

그는 대학(서울대 불어교육과 80학번) 시절 용돈 벌이 삼아 번역을 시작했다. 졸업 후 고교 교사를 하다 전교조 문제로 89년 해직되고 나서 학원강사며 방송작가 일을 하며 짬짬이 번역을 했는데 평이 괜찮아 일감이 많았단다.

자신을 얻어 출판사에 무작정 이력서를 낸 끝에 처음 전문번역가로 일한 곳이 도서출판 열린책들. “처음엔 일본 실용서를 번역했는데 편집자가 실용서를 이처럼 매끄럽게 옮길 수 있냐며 문학 번역을 추천했었지요.”

이렇게 해서 92년 브렘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냈는데 언론의 호평을 받아 문학 번역가로서 순조롭게 출발했단다. “『개미』를 만난 것도 행운이었죠. 당시 원고가 출판계에 소개는 됐지만 워낙 무명인데다 내용이 까다로워 사장되다시피 한 것을 제가 보고는 출판사에 출간을 강력히 권했죠.”

이거 겸양이다. 행운이 오늘의 그를 만든 것이 아니다. 문학과 어학에 관한 관심과 실력을 감안하면 그는 준비된 번역가였다.

“대학 때 사회과학 서적을 읽기 위해 일본어를 배웠고, 프랑스어는 전공이고, 영어야 누구나…”라고 하지만 중국어며 러시아도 손댔을 만큼 어학에 관심이 많았다.

프랑스 유학 중이던 97년 움베르토 에코의 작품을 원어로 읽기 위해 이탈리아어를 배우기 시작해 번역까지 할 정도니 어학엔 재능이 뛰어났던 셈이다.

하지만 정작 그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빼어난 우리말 구사 능력이다.

“원래 작가가 되고 싶어 고교 시절부터 맘에 드는 구절을 보면 따로 메모했어요. 한때는 이를 바탕으로 ‘우리말 용례사전’이란 책을 준비하기도 했고요.”

이 덕에 그가 옮긴 책에선 아름답지만 좀처럼 쓰이지 않는, 그래서 때로는 독자의 불평도 사는 우리말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인터넷을 보니 제가 ‘손방’(아주 할 줄 모르는 솜씨)이라는 표현을 쓴 것을 두고 왈가왈부하기도 했던데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닙니다. 가장 적합한 표현을 찾아 고심한 결과죠.”

그의 번역이 빛나는 데에는 특유의 치열함도 작용했다. 에코의 작품을 번역할 때는 언급된 텍스트 등을 찾아 A4 용지 300쪽의 참고자료를 마련하고 나서야 번역을 시작한 것이 그 예다. 또 가능한 한 자기가 소개하는 작가를 만나고, 작품 속의 장소를 답사하는 정성도 그렇다.

“93년 『개미』를 번역할 때 처음 프랑스로 가서 작가도 만나고, 작품 배경인 퐁텐블로 숲도 가 봤죠. 또 우연히 번역가로도 이름을 떨친 시인 보들레르의 묘에 가서는 ‘영감을 달라’고 기도하기도 했고요.”

그는 이 같은 ‘체험’이 작가와의 소통을 돕고 작품의 행간을 읽을 수 있는 힘을 키워준다고 했다. 에코에 흠뻑 빠져 그의 작품세계를 좇아 이탈리아를 여행한 뒤 직접 만날 계획이라는 그에게 번역 기준을 물었다.

“우리 문학이 소홀하게 여기는 분야, 예를 들면 문학성이 뛰어난 스릴러를 소개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문학번역가로서의 사명감이 읽혔다.

글=김성희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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