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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은 목숨 걸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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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낙하산 부대, 또는 공수(空輸)부대라 불리는 특전사의 주요 임무는 적의 후방에 침투해 주요 시설을 파괴하고 적을 교란하는 것이다. 매우 중요한 임무지만 그만큼 위험이 따른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그리고 정확한 임무 수행을 위해 평소에 수백.수천번의 낙하 훈련도 해야 한다.

드라마 '영웅시대'를 봤다. 지난 1일에는 소위 '낙하산 인사'의 내용이 방영됐다. 극중 세기건설 사장은 고속도로 건설을 앞두고 태국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직원과 자신의 큰아들을 함께 중기(重機)공장으로 보낸다. 의외의 인사에 본인들은 물론 중기공장 기술자들도 못마땅해 한다. 중기에 대해서 모르기는 두 사람 모두 마찬가지다. 공장 기술자 입장에선 이들 모두 '낙하산'이다. 그런데 이들의 태도가 사뭇 다르다.

한 사람은 고속도로 건설은 사람이 아니라 장비 싸움이 될 것이라는 사장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열심히 상황을 파악하면서 체질을 개선해 나간다. 그런데 한 사람은 조용히 있다가 다시 본사에서 부르기만을 기다린다.

낙하산 인사는 한국 사회의 고질병이다. 정권이 바뀌면 사람도 바뀐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문제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생뚱맞은' 사람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현 정권에서도 자리를 마련해 줘야 하는 사람이 아직 6000명이나 남아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돌고 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진 정치인들, 자기 자리에서 밀려나 놀고 있는 사람들, 원래 특별히 하는 일이 없었던 사람들. 그들을 살리기 위해 이리저리 자리를 주다 보니 전혀 엉뚱한 사람이 주요 자리를 차지하기 일쑤다. 그런 낙하산 대부분은 자신이 맡은 자리에 관해 아는 게 없다. 배우고자 하는 열의도 없다. 관심도 없다. 그 자리를 '과실'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적당히 어깨에 힘주고 열매만 따먹다가 기회가 되면 더 좋은 자리로 가려는 생각뿐이다. 개인은 살리지만 조직은 죽이는 인사다.

한국 체육계의 수장인 대한체육회장을 뽑는 선거가 23일로 다가왔다. 지금 양상은 3파전이다. '노심(盧心)'을 들먹이며 정치권의 영향력을 강조하는 후보가 있고, 집권 여당 실세들이 개인적으로 밀고 있는 후보도 있다. 그런가 하면 체육회장은 체육인이 맡아야 한다며 나선 후보도 있다. 당선 가능성에 따라 체육인들의 이합집산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누가 힘이 있느냐가 아니라 누가 한국 체육을 이끌고 나갈 비전이 있는가다.

과연 무슨 생각으로 대한체육회장을 하려고 하는가. 평소에 한국 체육에 관해 고민은 해봤는가. 어떤 것이 한국 체육의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한국 체육이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가. 정치권과 연결되는 것이 한국 체육 발전을 위해 약이 될 것인가, 아니면 독이 될 것인가. 한국 체육의 발전을 위해 내 한몸 바칠 각오가 돼 있는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낙하산은 무조건 나쁘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영웅시대'의 예에서처럼 조직의 체질 개선을 위해서는 오히려 낙하산이 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전제가 있다. '목숨을 걸 만한 의지'다.

이미 낙하산으로 내려와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 투하를 기다리고 있는 6000여명의 대기자에게 묻고 싶다. 과연 적의 후방에 투입돼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할 만한 각오가 돼 있는가, 아니면 휴양지에서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려고 하는가.

손장환 스포츠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