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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 있다면…누구에게나 열린 멋진 여행과 근사한 공연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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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호 08면

1 모나코 몬테카를로(1897), 알폰스 무하(1860~1939) 작, 석판화, 108x74.5㎝

한때 지하철역을 커다란 지방자치단체 광고들이 점령한 적이 있었다. 명승지와 특산물을 배경으로 도지사나 군수가 어색한 미소를 띠고 손을 내밀며 “OOO로 오세요”라고 외치는 광고 말이다. 이런 광고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비슷비슷한 데다 진부함 때문에 그 지방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기는커녕 저만치 달아나버린다. 이들을 보다가 체코 출신 화가 겸 디자이너 알폰스 무하(알퐁스 뮈샤·1860~1939)가 만든 광고들을 보면 그 100년도 더 된 광고들의 세련미에 새삼 놀라게 된다.

문소영 기자의 명화로 보는 경제사 한 장면 <13> 무하와 로트레크의 예술적 광고(上)

무하의 작품 ‘모나코 몬테카를로(사진 1)’는 모나코의 해변 휴양도시 몬테카를로(당시부터 카지노로 유명했다)로 봄 여행을 떠나라고 유혹하는 프랑스 철도회사의 광고 포스터다. 그런데도 몬테카를로의 볼거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 않다. 그 대신 하얀 옷을 입은 여인과 마치 불꽃놀이 때 터지는 불꽃 같은 형태를 취한 화환을 통해 이 도시의 꽃으로 가득한 봄 경치와 축제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유행하던 장식미술 양식인 아르누보(Art Nouveau)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율동적이고 우아한 선의 흐름을 통해서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이 오래된 광고는 제품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는 현대의 이미지 광고와 일맥상통하는 셈이다. 19세기 말에 이런 예술적인 포스터가 나오고 있었다는 것은 이미 이때부터 상품과 서비스 광고에 기업들이 그만큼 공들이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당시부터 이런 광고의 예술적 면모에 반한 사람들이 벽에 걸린 포스터를 몰래 떼어가서 수집하는가 하면 포스터 붙이는 일꾼을 매수해 손에 넣기도 했다고 한다. 마치 오늘날 우리가 마음에 드는 잡지 광고를 스크랩하거나 TV광고를 블로그에 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당시 자본주의가 성숙하면서 자본주의의 꽃인 광고도 그 위상을 떨치게 된 것이다.

물론 광고의 역사 자체는 그보다 훨씬 오래됐다. 어떤 학자들은 고대 이집트 로제타석에 새겨진 왕의 업적도 광고의 일종으로 보기도 한다. 더 좁은 의미의 광고, 즉 매스미디어를 통한 상품 광고도 17세기 중엽에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당시 영국 신문에 초콜릿이나 차 광고가 실렸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시기 광고는 텍스트 위주였고 기껏해야 간단한 흑백 도판이 곁들여지는 정도여서 상품에 대한 단순한 정보 전달이 주를 이뤘다.

2 물랭 루즈-라 굴뤼(1891),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1864~1901)작, 석판화, 191x117㎝

그러다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본격적인 광고의 시대가 열릴 여건이 형성됐다. 대량생산으로 제품이 쏟아져 나오게 되니 이들을 더 활발히 광고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때마침 여러 색깔을 인쇄할 수 있는 다색석판인쇄술(chromolithography) 등 새로운 인쇄기술이 대거 개발되면서, 소비자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는 현란한 광고 제작이 가능해졌다.

마침내 1866년 파리에서 쥘 셰레(1836~1932)가 석판인쇄 공방을 차리고 선명하고 밝은 색채로 가득한 포스터를 제작하면서 근대적인 광고의 시대가 열렸다. 곧 앙리 툴루즈 로트레크(1864~1901)나 무하 같은 대가들의 포스터가 파리의 거리 곳곳을 장식하게 됐다.

무하가 연극 포스터와 각종 상품 광고를 많이 제작한 반면 툴루즈 로트레크는 파리의 환락가인 몽마르트르에 머물면서 주로 카바레나 서커스의 광고 포스터를 그렸다. 그런 작품 중 대표적인 것이 ‘물랭 루즈-라 굴뤼(사진 2)’다. 이 포스터는 유명한 카바레 ‘물랭 루즈(붉은 풍차)’의 광고인데, 이곳의 간판 스타였던 프렌치 캉캉 무용수 라 글뤼를 내세우고 있다. 그녀는 스커트를 휘두르며 다리를 높게 차 올리는 캉캉춤의 대표적 동작을 보여주는 중이다. 그 앞에서 코믹한 동작으로 춤을 추는 남자는 역시 물랭 루즈의 인기 무용수였던 발랭탱이다.

툴루즈 로트레크는 멀리 있는 라 글뤼에게 환한 스포트라이트를 주고 가까이 있는 발랭탱은 그보다 크면서 어두운 실루엣으로 표현하는 신선하고 대담한 방식으로 이들을 나타냈다. 또 그들을 둘러싼 관객도 검은 실루엣으로 표현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어두우면서 무대의 무용수들에게 현란한 조명이 비치는 댄스홀의 분위기가 생생하게 살아난다.

이러한 광고 포스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루어진 ‘소비의 민주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무하와 툴루즈 로트레크의 광고는 파리의 번화한 길거리에 붙여졌고 당연히 누구나 그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포스터에서 선전하는 상품과 서비스(물랭 루즈 같은 문화서비스를 포함해서)는 누구든 구매할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돈이 있으면’이라는 전제가 붙지만. 산업혁명과 시민혁명 전까지 계층별로 접할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 자체가 차별화돼 있었다. 부유한 상인도 귀족이 즐기는 콘서트를 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물랭 루즈는 누구든지 갈 수 있었다.

우리나라만 해도 조선시대 상민은 돈이 많아도 도포를 입는 것이 금지돼 있었고 양반조차도 왕실에서만 쓰는 주칠(붉은 칠)을 한 물건을 쓰거나 99간 이상의 기와집에서 살 수 없었다. 상류계급이 쓰는 물건은 낮은 계급 사람들이 구경조차 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대에는 최고급 샤넬 핸드백도 누구든지 광고로 접하고 (돈이 있으면) 살 수도 있다.

이런 소비의 자유화와 민주화는 자본주의의 매력인 동시에 함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광고는 그것의 극단적인 표현이다. 영국의 미술평론가 존 버거(1926~)는 광고가 자유라는 단어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고, 그 경우 자유란 구매자에 의한 선택의 자유와 제조업체들에 의한 기업활동의 자유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구매자의 자유란 것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기껏해야 이 물건이냐 저 물건이냐를 선택하는 자유일 뿐이고, 오히려 광고는 오로지 한 가지 메시지, 즉 무엇인가를 구매해야만 삶이 더 나아지고 구매력만이 삶의 능력이라는 메시지로 사람들을 구속한다는 것이 버거의 주장이다.

또 광고의 아이러니컬한 면은 예술적인 광고일수록 그 제품의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기보다 어떤 선망의 이미지만 구축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프랑스의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1929~2007)는 현대인은 물건을 살 때 더 이상 물건의 사용가치, 즉 기능을 따지지 않고 광고와 미디어로 확산되는 상품의 기호가치, 즉 그 상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이미지를 따져 소비한다고 했다. 한마디로 과시를 위한 소비다. 그의 이론은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 개념을 정립한 미국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의 이론의 연장선상에 있다.

베블런과 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갤브레이스, 갤브레이스와 하이에크의 논쟁 등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룰 것이다. symoon@joongang.co.kr



영자신문 중앙데일리 문화팀장. 경제학 석사로 일상 속에서 명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찾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관련 저술과 강의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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