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지(46) 정동극장장과 문훈숙(42) 유니버설발레단장은 '언니 동생 하는' 사이다. 1970.80년대 한국 발레계의 주역 발레리나로 최고를 다투던 때부터 그들은 서로 위하고 챙겼다. "남들은 라이벌이니 맞수니 하면서 대결 의식을 부추기지만 친자매 이상의 속 깊은 우정을 나눠왔어요." 최 극장장이 말문을 열자 문 단장은 "그래서 더 열심히 할 수 있었지요"라고 받았다.
▶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左)을 데이트 손님으로 청한 최태지 정동극장장은 "우리더러 왜 발레를 안 하느냐고 묻는 이들이 많은데 지금 가장 아름다운 균형을 잡고 인생 무대에 서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박종근 기자
4일과 5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정동극장에서 열리는 개관 10주년 기념공연 '최태지의 정동데이트-문훈숙의 발레 이야기'는 그 자매애의 결실이다. 지난해 극장장에 취임한 최씨가 뭔가 특별한 열 돌 맞이 행사가 없을까 고민하다가 자연스레 문씨를 손님으로 불러냈다. 젊은 시절을 발레에 바친 인연으로 엮인 두 사람이 마흔 줄에 돌아보는 삶과 예술은 그들이 기른 후배와 춤과 함께이기에 더 빛난다. 문 단장이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자신의 발레 인생을 관객에게 털어놓는 사이사이 '지젤''백조의 호수''심청' 등 여섯 작품의 중요 대목을 황혜민.엄재용.유난희.황재원.강예나씨가 선보인다.
"문 단장의 발레는 가식없는 순수의 세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가 맡은 인물을 100% 그대로 만들어냅니다. 무대에서 막 뒤로 걸어나가는 마지막 한 걸음까지 긴장을 풀지 않고 섬세하게 표현하는 그의 집중력과 열성은 샘이 날 정도지요. 하지만 베일에 쌓인 듯 신비스런 그의 내면은 나만 알기에는 너무 아까운 얘기가 많아요. 그 속내를 어디까지 풀어낼까 사실 고민이에요." 최 극장장은 이번 무대가 해설 발레가 아니라 '한 발레리나가 걸어온 길'을 통해 본 발레의 세계라고 설명했다.
재잘재잘 소곤소곤, 이야기 보따리를 푼 두 여자는 단숨에 세월을 건너뛰어 그들의 전성시대로 우아하게 도약했다. 토슈즈만 신으면 금세 무대에 사뿐 오를 듯 나이를 잊은 두 사람은 합창하듯 "발레는 운명이었다"고 말했다. "발레를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발레가 나를 선택했다고 봐야지요. 발레는 하고 싶어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천직입니다." 문 단장은 춤꾼을 '신들린 사람'이라고 불렀다.
"'해적'이 마지막 공연이었으니까 벌써 무대에 안 선 지 10년이네요"라는 최 극장장 말에 문 단장은"무대에서 내려온 지 3년 됐네요"아쉬워했다. 유럽의 발레리나들은 은퇴하는 쉰 살 무렵까지 무대에 서서 부러웠다고 털어놓은 문 단장은 "우리의 춤을 기다리는 관객이 있다면 하반기쯤…"이라며 여운을 남겼다.
한국 발레의 내일을 위한 두 사람의 걱정과 기대는 맏언니다웠다. 문 단장은 "후배들의 기량이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지만 기술 터득은 기초"라며 "표현과 연기력이 더 풍부하게 다듬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극장장은 "준비된 극장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발레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조명과 무대장치 등을 수준급으로 끌어올리는 일에 힘을 쏟겠다"고 약속했다. 발레와 사랑에 빠진 두 여자의 발레 이야기는 이제 시작처럼 보였다. 02-751-1500.
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