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유통업자 홍모(48)씨는 2008년 4월 인터넷 도박사이트 업체에 투자할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는 “매달 투자금의 25%씩 돌려받아 4개월이면 원금을 모두 건지고 투자 이익까지 합쳐 최대 3억4100만원을 더 벌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검찰은 고수익을 미끼로 투자금을 모은 혐의(유사수신행위규제법 위반)로 홍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첫 재판이 열린 올 2월 홍씨는 서울중앙지법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재판부는 경찰에 그의 신병을 확보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현재 재판이 두 차례 연기된 상태다. 검찰은 뉴질랜드 영주권자인 그가 기소 후 출국해 뉴질랜드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홍씨처럼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던 중 해외로 빠져나가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다. 최근엔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한상렬(60·구속)씨가 불구속 재판을 받던 중 허술한 관리를 이용해 방북했다.
대검 박은재 공판송무과장은 “피고인이 해외로 도주하면 그들에 대한 사회적 처벌과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라는 법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피고인의 출국을 금지하는 것은 보석 제도 취지에 어긋나는 만큼 법원에서 피고인의 신병 관리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법원은 “출국 금지에 관한 권한이 없는 법원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부당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경래 박사는 “해외 여행이 활발해지면서 불구속 피고인 관리의 맹점을 악용하는 사례가 더 늘 가능성이 있다”면서 “ 관리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최선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