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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중 해외로 튀는 피고인 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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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주류 유통업자 홍모(48)씨는 2008년 4월 인터넷 도박사이트 업체에 투자할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는 “매달 투자금의 25%씩 돌려받아 4개월이면 원금을 모두 건지고 투자 이익까지 합쳐 최대 3억4100만원을 더 벌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검찰은 고수익을 미끼로 투자금을 모은 혐의(유사수신행위규제법 위반)로 홍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첫 재판이 열린 올 2월 홍씨는 서울중앙지법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재판부는 경찰에 그의 신병을 확보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현재 재판이 두 차례 연기된 상태다. 검찰은 뉴질랜드 영주권자인 그가 기소 후 출국해 뉴질랜드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홍씨처럼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던 중 해외로 빠져나가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다. 최근엔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한상렬(60·구속)씨가 불구속 재판을 받던 중 허술한 관리를 이용해 방북했다.

8일 법무부와 검찰에 따르면 재판 중 무단 출국한 피고인은 2007년 8명에 그쳤으나 2008년 58명, 2009년 57명으로 급증했다. 2007년 이후 올해 7월까지 143명에 이른다. 검찰 관계자는 “불구속 재판 원칙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그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은 없다”며 “해외 도주 피고인이 총 200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주 피고인은 법정형 10년 이하의 범죄에 해당할 경우 형이 선고된 때부터 징역은 최대 10년, 벌금은 3년이 지나면 형 집행이 면제된다.

대검 박은재 공판송무과장은 “피고인이 해외로 도주하면 그들에 대한 사회적 처벌과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라는 법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피고인의 출국을 금지하는 것은 보석 제도 취지에 어긋나는 만큼 법원에서 피고인의 신병 관리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법원은 “출국 금지에 관한 권한이 없는 법원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부당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경래 박사는 “해외 여행이 활발해지면서 불구속 피고인 관리의 맹점을 악용하는 사례가 더 늘 가능성이 있다”면서 “ 관리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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