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그림자 인사’를 없애야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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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말이나 행동은 그럴싸한데 다른 계층 사람들이나 다른 부처 공무원과의 소통이 어렵다. 아무리 엘리트라도 공직자는 남부터 앞세우고 정의의 이름 아래 공동선을 구현하는 데 앞장서는 봉사자라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자기 잇속 챙기기에 급급하다.

요즘 세인의 관심을 끄는 고시제도며 장관 자녀 특채 등에서 비롯되는 신분상승 제도는 오래전부터 유능한 인재를 발탁하기 위해 제 몫을 하긴 했다. 그러나 제도라는 것이 늘 한계가 있어 운영의 묘로 보완이 되면서도 악용되곤 했다. 사람들은 흔히 제도를 만병통치약인 줄 착각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도를 잘 만들면 된다고 생각한다. 행정안전부가 각 부처 특채에 개입하면 문제가 풀릴 것 같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부처 간 지배의 불균형이 전체 행정을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셸 푸코나 이반 일리치의 생각이 꼭 맞는 것은 아니더라도 “병원 때문에 환자가 생긴다”는 주장을 전혀 외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고시제도만 해도 미국에서는 이제야 사지선다형을 없애기 시작했다지만 10년 전에 행정고시 1차 시험을 ‘공직 적격성 테스트’(PSAT)로 바꾸어 찍어서 맞히는 요행수를 넘어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해석, 그리고 상황판단과 해결능력을 검증하는 쪽으로 보완해 어느 정도 수준급 공직 후보자를 선정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3차 면접에서는 시험관으로 하여금 무자료 면접을 하게 해 성별 말고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공직관과 표현력 등을 테스트하며 편견과 이해의 개입을 최소화했다. 특채는 진작부터 있어 왔던 제도이고 개방직 제도의 도입도 말썽깨나 부렸으나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터다.

문제는 개방직이나 계약직이다. 한 틀 속에서 사유하고 행동하는 막힌 엘리트 집단을 보완하기 위해 전문가와 경험자를 선발함으로써 순혈주의를 극복하고 조직에 새로운 기운을 돌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절차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후보선정위원회가 특정인에게 유리하게 구성된다면 그런 경쟁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이번 경우에도 외교부 간부가 두 명씩이나 진을 쳤다. 기준 또한 임의로 마구 바꿨다. 무슨 수로 공정의 잣대를 구부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나라 인사는 ‘들러리 인사’에다 ‘그림자 인사’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그런 지배계급 말고 누군가가 최고 실력자의 그림자 뒤에 숨어 실권을 행사하며 남들은 들러리로 세우고 자기네 사람을 심어 놓는 신지배계급이 하는 사람몰이 말이다.

이참에 외무직 특채라면 행정고시 3차 시험처럼 유관부처 실무자, 국제 수준의 기업 임원, 그리고 당해 분야 전문교수 해서 3인이 무자료 면접을 하면 된다. 대학의 입학사정관 제도처럼 정직하고 존경받는 대사 출신 외교관과 외부인사에게 맡기는 것도 한 방법이다. 여기에 출신 대학 지도교수나 전직 직장 상사의 추천서를 첨부하게 한다. 그야말로 정직하고 사심 없이 인물의 진면목을 좋은 점, 부족한 점 모두 해서 평가해 보내면 어떨까? 숨어서 하는 청탁을 양성화하자는 것이다.

공직 자체의 값도 내려 신분의 올가미를 거두자. 장관의 그것 등 그득한 특권을 걷어내자. 그리고 공직 엘리트 자신의 값도 제대로 매겨 보자. 이것이 신분사회의 잔재를 털어버리고 진정한 선진평등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다.

김광웅 서울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