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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우용의 근대의 사생활

안방 차지한 TV 수상기, 가족 관계를 바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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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1970년께 한 가정집 안방의 TV 수상기. 가족 구성원 전부에 이웃집 식구까지 TV 앞에 모여 앉아 있지만, 시선은 한 방향이다. TV 앞에서 사람들은 서로 쳐다보지 않고 대화하는 ‘기술’을 익혔고, 서로가 서로를 소외시켰다. (출처 :『사진으로 보는 한국 백년』)

1956년 5월 12일, HLKZ-TV가 우리나라 최초로 TV 방송을 시작했다. 하루 두 시간씩 격일제로 송출하는 방송이었지만 ‘활동사진’과 라디오가 결합한 기계는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도 남았다. 그러나 그 무렵 국내에 보급된 TV 수상기는 300대 남짓에 불과해 방송이 상업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은 없었다.

1957년 장기영은 적자에 허덕이던 HLKZ-TV를 인수해 대한방송주식회사로 개편했다. 머지않아 TV 시대가 오리라는 것을 예상한 결단이었다. 그러나 1959년 2월 큰 불이 나 방송 장비가 모두 불타 버렸다. 대한방송은 한동안 AFKN(주한미군방송) 채널을 빌려 하루 30분씩 방송을 계속했지만, 결국 1961년 10월 15일 일체의 권리를 국립 서울 텔레비젼 방송국(현 한국방송공사)에 양도했다.

그로부터 5년 뒤, 금성사가 처음으로 국산 TV 수상기를 선보였다. 가격은 6만8350원으로 쌀 30 가마니 값에 상당했다. 아무나 가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으므로 어느 집에서건 제일가는 보물 취급을 받았고, 이웃의 부러움을 샀다. 그 무렵 TV 수상기는 가장의 능력을 측정하는 바로미터이자 학생의 가정 환경을 엿보는 가늠자였다. 학기 초만 되면, 교사들은 학생 가정환경조사서를 펼쳐 놓고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지시하곤 했다. “집에 테레비 있는 사람 손들어.”

TV 수상기는 영상과 소리를 함께 전달하는 기계에 머물지 않았다. 이 기계는 안방 한구석을 차지하자마자 가정생활 전반을 뒤바꿔 놓았고 지속적으로 변화시켰다. 처음 한동안은 이웃 사람을 끌어들여 저녁 시간대를 풍성하게 하는 구실을 했다. TV 수상기가 있는 집은 자연스럽게 소규모 지역 커뮤니티의 중심이 됐다. 그러나 이 기계를 장만하는 집이 늘어나면서, 이웃 간의 왕래는 끊어져 버렸다.

1 가구 1 TV 시대가 되자 집 안에서 가족끼리 모여 앉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서로 대화하는 시간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TV는 가족 구성원 각자에게 향하던 시선을 독점했고 ‘소통의 의제’를 제약했다. 그럼에도 TV는 온 가족을 일정 시간 동안 같은 ‘감성’으로 묶어두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오늘날 다채널 DMB와 결합한 개인용 수신기들은 TV 방송이 제공했던 최소한의 연대 틀마저 허물고 있다. 각자 자기 방에서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따로 보는 시대에, 가족 공동체가 어떻게 달라질지 두렵고 궁금하다.

전우용

◆전우용=서울대 국사학과 졸, 동 대학원 박사.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상임연구위원, 문화재전문위원 거쳐 현재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연구교수. 저서 『서울은 깊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