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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가격 변수 어떻게 움직일까?] 2. 금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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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해 줄곧 떨어지던 시중금리가 올 들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시중 자금의 지표금리인 국고채 3년물은 29일 채권시장에서 지난해 연말(3.28%) 대비 0.66%포인트나 뛰어 연 3.94%로 마감됐다.

경기 회복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데다 국채 발행 물량이 크게 늘어날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갑자기 금리가 급등하면서 은행 빚이 많거나 채권형 펀드에 투자한 사람들 사이에 비상이 걸렸다. 금리가 오르면 채권값은 떨어진다. 따라서 돈을 머니마켓펀드(MMF) 등 채권형 펀드에 묻어둔 사람들은 자칫 손해를 볼 수 있다. 또 은행 돈을 많이 빌린 사람은 금리가 오르면 이자 부담이 늘어난다.

이렇게 금리가 불안해지면서 정부는 2월 국고채 발행물량을 월 평균(5조원)보다 적은 3조원으로 축소키로 했다. 이와 함께 한국은행은 19일과 24일 모두 2조원의 국고채를 사들여 국고채 가격 안정에 나섰다. 이에 따라 지난주 중반 시중금리가 다소 하락세로 돌아서는 듯했지만 한 주일 거래를 마감하는 금요일(28일) 다시 연중 최고치를 회복했다.

이런 추세하면 연말 국고채 3년물 금리가 당초 예상됐던 3.4~3.7%를 넘어 4%선까지 상승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같이 갑작스러운 금리 상승에 금융시장 관계자들도 크게 당황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선 경기 회복의 신호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 예상치 못한 금리 급등=연초부터 상승 조짐을 보이던 시중금리가 본격적인 급등세를 나타낸 것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 13일 콜금리를 연 3.25%로 유지하기로 결정한 이후부터다.

금통위는 이날 "시중에 풀린 돈이 하반기부터 물가 상승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고, 하반기에는 연 5%대의 경제 성장이 예상된다"고 밝혀 금리 인하의 가능성을 크게 좁혀 놓았다. 이런 발표가 나오자 전날까지 3.45%였던 국고채 금리는 순식간에 3.5%대로 올라섰고 이후 급등세를 지속하며 4%대에 육박했다.

올 상반기에도 경기가 나빠 금리 하락세는 지속될 것이란 시장 참여자들의 당초 예상이 모두 빗나간 것이다. 가뜩이나 금리가 너무 낮은 게 아니냐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던 터에 금통위가 금리 인하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자 투자심리도 순식간에 바뀌기 시작했다.

금융회사들은 보유 채권값의 손실을 줄이기 위해 로스컷(손절매)에 나섰다. 지난주에만 1조원 규모의 손절매 물량이 나온 것으로 추산된다. 채권형 펀드에서도 마이너스 수익률이 속출했다.

올해는 자금 수요가 많을 것이란 점도 금리 상승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정부의 종합투자계획이나 벤처투자 활성화 대책은 자금 수요를 늘리는 정책이어서 올해는 금리가 오를 요인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 경기 회복과 관련 있나=시중금리가 하락세를 이어갈 것이란 당초 예상을 뒤집고 연초부터 상승세를 보이는 것은 경기 회복을 알리는 신호라는 시각도 있다. 이런 전망의 근거로는 카드사용액의 증가와 도소매 판매의 감소세 둔화가 꼽힌다.

카드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현금서비스를 제외한 카드 사용액은 44조865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0.6% 늘었다. 소비의 정도를 나타내는 도.소매 판매는 지난해 12월 전년 동기 대비 0.1% 감소했지만 감소폭은 10월(-0.25%)과 11월(-1.6%)에 이어 3개월째 줄었다.

특히 5개월째 계속 감소됐던 자동차 판매는 신차 출시 효과와 경차 판매 증가 등으로 5.9% 늘었다.

실물경기보다 일반적으로 6개월가량 앞서 움직이는 증시는 실제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주가가 오르면 미래에 소득이 증가할 것으로 보는 개인들이 소비를 미리 늘려나가는 '부(富)의 효과'도 예상된다. 그동안 굳게 닫아뒀던 지갑을 열게 돼 기업의 매출이 증가하고 투자가 확대되면서 경기가 회복되는 선순환을 낳을 수도 있다.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난다면 기업의 자금 수요가 확대되면서 회사채 발행 물량이 늘어나 금리는 급등할 수 있다. 금융시장 전문가들이 최근의 금리 상승을 경기 회복의 조짐으로 보는 이유다.

◆ 급상승 지속되기는 어려워=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이번 금리 상승 배경에는 경제 상황의 호전보다 수급의 영향이 컸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재정의 조기 집행에 나서면서 올해 59조원에 달하는 국고채 발행 예정 물량 중 8조원을 1월 중 발행키로 했다. 특히 정부가 지난 3일 "올해는 10년물 발행 물량을 늘리겠다"고 발표하면서 연초부터 채권시장을 자극했다.

채권은 만기가 길수록 금리에 민감하기 때문에 연초부터 10년물 금리가 뛰었고 3년물과 5년물 국고채는 물론 회사채 금리도 덩달아 치솟기 시작했다.

시중금리가 오르려면 인플레이션이 나타나거나 경기가 회복돼 민간의 자금 수요가 늘어나야 한다.

하지만 물가는 안정돼 있고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이 늘어날 기미도 없다. 소비와 투자 증가에 따른 펀더멘털(경제의 실질여건)의 변화라면 금리 상승 추세가 오래 갈 것이지만 일시적 수급 불균형만으로는 금리 상승이 지속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김동호.나현철.김준술 기자

◆ 도움말 주신 분=국제금융센터 이인우 채권팀장, 금융연구원 신용상 연구위원, 동원증권 고유선 선임연구원, 동양종합금융증권 이동수 금융시장팀장, LG경제연구원 조영무 선임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KDI) 임경묵 연구위원, 씨티은행 오석태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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