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생산 능력 뛰어난 은행이 살아남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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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호 24면

국제그룹. 한때 재계 순위 7위, 수출 순위 3위의 중견재벌이었던 국제그룹은 서슬 퍼런 5공화국 시절의 정치적 희생양이 되면서 1985년 2월 최종부도 처리되었다. 이로 인해 모기업 국제상사를 포함해 연합철강·동서증권 등 20여 개 계열사들은 새 주인을 찾아야만 했다. 당시 청와대에서 개최된 재벌총수 만찬에 그룹회장이 비행기 연착으로 지각하면서 최고 권력자의 미움을 샀다는 루머까지 나돌 정도로 이해하기 힘든 파국이었다.

김우진의 캐나다 통신

국제그룹의 공중분해는 조직이론의 자원의존(resource dependence) 모델로 설명될 수 있다. 즉 어떤 조직의 존망(存亡)은 그 조직이 의존하는 핵심 자원의 통제에 의해 결정된다. 정치경제 상황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던 당시, 서울이 아닌 지방에 본사가 있게 되면 권력으로부터 소외되기 마련이다. 지리적 불리함(location disadvantage)은 국제그룹에 치명적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적절한 전략적 조정으로 외부의 제약요건을 완화할 수 있으나, 국제그룹은 반대의 대응을 하고 말았다.

자원의존 이론에서 말하는 기업의 전략적 선택(strategic choice)은 사적 정보의 확보를 통한 신속한 대응을 의미한다. 리먼 브러더스의 전 CEO 풀드는 미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왜 우리 회사가 망하도록 내 버려뒀는지 아직까지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불량채권을 가장 많이 보유했던 리먼의 최고책임자가 당시 회사 사정을 모를 리 없을 터인데 이런 궤변을 늘어놓는 이유가 뭘까. 경쟁사였던 메릴린치와 씨티는 신용위기 초기국면에 CEO를 교체하고 부실을 공표하면서 면죄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리먼은 기존 체제를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풀드가 ‘월스트리트의 고릴라’로 불리며 15년 동안이나 리먼을 이끌던 신적인 존재였기 때문이다. 외부 상황에 대한 전략적 조정이 늦어지면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도 리먼에는 이슈가 되어 버렸다.

은행의 가장 큰 특징은 고객과의 관계(relationship) 형성을 통해 정보를 획득하고 그 정보를 모니터링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핵심 고객의 확보나 부실채권 관리, 대출의 결정 등이 모두 이 맥락에서 이루어진다. 은행의 정보생산 능력은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을 감소시켜 사회 전체의 복지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은행원의 횡령사건들은 고객정보를 생산, 분석하기는커녕 이를 악용하면서 가능해진다. 재무개선 약정만 하더라도 은행의 대리감시(delegated monitoring) 기능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데, 어떤 기업들은 반발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 은행이 마치 ‘갑’인양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결과가 아닌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금융이 금융답기 위해서는 정보의 생산 및 공유 능력이 향상되어야 한다. 핵심 역량 제고에 노력하기보다 겉모습 포장에만 신경 쓴다면 우리 금융의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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