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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후의 3원칙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82호 31면

2009년 4월 30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는 하루 종일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게이트 사건과 관련,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중앙수사부에 출두한 날이었다. 전 국민의 시선이 노 전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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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이 10시간 동안 조사를 모두 마치고 대검 청사로 나온 건 다음 날인 5월 1일 새벽 무렵이었다. 당시 대검 정문에서 그의 귀가를 취재하기 위해 기다리던 나에게 정보 분야를 담당하던 한 검찰 간부가 넌지시 말을 걸었다.

조 기자, 노 대통령 측근들 중에서 부정과 비리로 사법 처리된 이들이 적잖은데 말야. 앞으로도 전혀 그런 걸로 검찰청 문을 오락가락하지 않을 사람이 누군 줄 알아. 다 걸려도 이호철(청와대 국정상황실장과 민정수석 역임)과 문재인(청와대 민정수석과 비서실장 역임)만은 아닐 거란 말이지.

그러면서 그 간부는 문재인씨를 진수의 정사 삼국지에 등장하는 가후와 비슷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조조의 책사였던 가후는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에서 제갈량에 비견되는 인물이다. 가후에겐 세 가지 생활철칙이 있었다. 첫째, 말을 삼간다. 둘째, 인맥을 넓히기 위해 외부인을 만나지 않는다. 셋째, 자녀들의 결혼 상대를 명문가족에서 고르지 않는다. 최고 권력을 옆에서 보좌하는 자신의 재능을 다른 이들이 시기하거나 경계심을 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조심했다는 것이다.

적어도 현재까지 그 간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문씨는 또 지난해 경남 양산 재·보선 국회의원 선거 출마와 올해 부산시장 출마 권유를 받았으나 나가지 않았다. 대신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으면서 부산에서 변호사로 일한다. 이런 신중한 모습은 어쩌면 그가 본래 정치권과 맞지 않는 성정을 갖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결국은 그의 선택이 가장 큰 요인이다. 그가 생각하는 인생의 우선순위와 가치에 따른 선택이 중요하단 얘기다.

법조인 중에서 가후와 생활태도 면에서 유사한 인물은 또 있다. 이명재 전 검찰총장과 조무제 전 대법관이다. 두 분 다 청렴하기로 이름이 나 있다. 이 전 총장은 2002년 1월 불명예 퇴진한 신승남 전 총장의 뒤를 이어 검찰총장이 됐다. 그의 취임을 여야가 한목소리로 환영할 만큼 국민적 신뢰를 받았다. 조 전 대법관은 매년 공직자 재산공개 때마다 최하위를 기록했지만 딸깍발이 판사로서 여전히 존경을 받고 있다.

정말 아쉬운 건 우리 사회에 가후 같은 인물보다 가후 같지 않은 사람이 더 많아 보인다는 것이다. 지난달 20일부터 7일간 있었던 국회 인사청문회에선 김태호 총리 후보자 등 세 명이 한꺼번에 낙마했다. 이들은 대부분이 이른바 가후의 3원칙 준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지난 2일 출당된 한나라당 강용석(마포을) 의원의 몰락은 성희롱 발언, 즉 말을 삼가지 못한 게 결정적 이유였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케이스는 가후가 금기시했던 세 번째 항목의 폭을 넓게 해석해 보면 답이 나온다. 즉 가족 관리 면에서 실패한 경우다.

앞으로 고위 공직자가 되길 원하는 모든 이에게 권하고 싶다. 가후의 3원칙을 평생 가슴에 담고 실천하며 사시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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