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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수입차 40만대 시대, 차값과 유지비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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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하지만 수리비가 비싸고, 엔진오일이나 브레이크 패드처럼 기본적인 소모품을 갈아 끼우는 데도 국산차보다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게 현실이다. 작은 고장에 정비공장에 들어갔다가 월급의 절반이 수리비로 나가는 일도 생긴다. 서비스 공장이 부족해 차를 맡기면 1주일 이상 기다리는 게 보통이다. 수입차가 늘어나는 속도에 비해 수입차 인프라는 태부족하다는 얘기다.

금융회사 차장으로 지난해 6000만원대 BMW 528을 구입한 윤모(44)씨. BMW 528보다 700만원 이상 싼 현대 제네시스 3.8을 놓고 고민한 끝에 수입차를 택했다. 그는 올 1월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경미한 접촉사고를 냈다. 그는 BMW 공식 서비스 공장에 입고하면서 청구된 수리비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판금·도장비를 포함해 무려 600만원이나 됐다. 동급 국산차였다면 100만원이면 고칠 수 있었다. 결국 공식 서비스를 포기하고 서울 장안평의 수입차 전문점에서 250만원에 수리했다. 이후 윤씨는 정비공장에 들어갈 때마다 툭하면 100만원 넘게 나오는 청구서로 속이 상한다.

수입차 전문 정비업체의 한 직원이 차량의 앞 범퍼를 교체하고 있다. 판매 가격 하락으로 수입차 대중화 시대가 열렸지만 수리비는 여전히 비싸다. 국산차보다 세 배 이상 비싼 게 현실이다. [중앙포토]

수입차 서비스 불만은 지난해 12월 한국소비자원이 조사한 ‘승용차 서비스 실태(보증기간 이내)’에서도 나타난다. 소비자원이 2008년부터 지난해 9월 말까지 접수된 서비스 불만을 분석한 결과 국산차는 1276건, 수입차는 205건으로 나타났다. 소비자원은 판매량을 감안한 불만지수가 국산차는 91.09, 수입차는 255.51로 수입차의 불만 비율이 국산차의 2.8배에 달했다고 분석했다.

2007년 보험개발원 부설 자동차기술연구소는 수입차의 부품값과 정비수가에 대한 분석자료를 내놓았다. 이 자료에 따르면 공임을 뺀 부품값이 해외 현지 가격보다 최고 세 배 비쌌다. 공임을 더하면 수입차 수리비가 해외 현지보다 네 배 이상 비싸다는 추산이 가능하다. 벤츠 등 일부 수입차 업체들은 지난해 일부 부품가격을 최고 30% 인하했지만, 여전히 수리비는 국산차보다 세 배 이상 비싼 게 현실이다.

실제로 본지가 벤츠 E350, 아우디 A6 3.0, BMW 535와 국산 대형차의 수리비를 조사한 결과 이들 수입차가 서너 배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 제네시스의 에어 서스펜션 교체비용(공임 포함)은 80만원 선인데 이들 수입차는 320만∼380만원이었다. 통상 1만5000㎞ 이상 주행하면 교체해야 하는 앞바퀴 브레이크 패드(2개)는 국산 대형차가 11만원 선이지만 이들 수입차는 60만원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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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비 실태=#1. 올 5월 2년 지난 벤츠 S350을 6000만원에 구입한 김모(55·서울 서초구)씨는 승차감을 좌우하는 서스펜션에 잡소리가 나 정비공장을 찾았다가 1000만원 넘는 견적서를 보고 당황했다. 바퀴 세 곳의 에어 서스펜션이 고장 나 교체하는 데 개당 수리비가 350만원씩 나왔다. 벤츠 S클래스의 에어 서스펜션은 독일 컨티넨탈이 공급한다. 이 제품은 현대차 제네시스·에쿠스에 달린 것과 비슷하다. 제네시스의 에어 서스펜션 교체비용은 개당 80만원 선이다.

#2. 국산 중형차를 타다 지난해 11월 아우디 Q5(6550만원)를 구입한 이모(40·경기도 부천시)씨는 운행한 지 한 달도 안 돼 내비게이션이 고장 나기 시작하더니 차량 운행정보를 나타내는 MMI, 엔진 등에서 이상이 발견돼 지금까지 15차례 넘게 정비공장을 드나들었다. 특히 MMI는 한 달에 한 번꼴로 고장이 났지만 정비공장에서 원인을 찾지 못하고 “국내에서는 수리가 어렵다”는 최종 답변을 들었다. 이씨는 주행 중 사고가 날 위험이 크다고 보고 이달 초 아우디코리아에 차량 교체를 요구했지만 한 달째 답을 듣지 못하고 있다. 이씨는 “국산차를 탈 때 경험하지 못했던 불편한 서비스로 낭패를 봤다”고 말했다.

#3. 현대차 아반떼를 타다 2007년 큰맘 먹고 3000만원대 폴크스바겐 뉴비틀로 갈아탄 최모(39·여)씨. 3년째 접어들면서 잔 고장에 시달리고 있다. 정비공장에 다녀올 때마다 100만원 넘게 나오는 수리비 청구서는 최씨를 놀라게 한다. 지난달에도 에어컨이 시원찮아 서비스를 받다가 120만원의 수리비를 지불했다. 최씨는 “국산차는 30분이면 충분한 엔진오일 교체에 1박2일이 걸린다”며 “봉급생활자들이 수입차를 구입했다가 툭하면 월급의 절반에 달하는 수리비 때문에 당황하는 경우가 주변에 많다”며 손사래를 쳤다.

◆만만치 않은 유지비=폴크스바겐의 골프 2.0 디젤은 3000만원대 수입차에서 가장 인기 있는 차다. 국산 중형차보다 수백만원 비싸지만 연비는 30% 이상 우수하다. 연비가 좋아 유지비가 적게 든다는 소문에 국산차에서 갈아타는 고객이 많다. 하지만 유지비를 꼼꼼히 따져보면 부담이 만만치 않다. 수도권의 경우 서비스 처리 능력이 부족해 간단한 정비에도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 엔진오일 교체 비용도 16만원대로 국산 중형차의 세 배 수준이다.

수입차는 자동차보험료도 만만치 않다. 새 차는 동급 국산차에 비해 통상 40% 정도 비싸고, 4년 이상이 된 중고차의 경우 보험료 차이가 더 벌어져 통상 60% 이상 비싸다. 연식이 오래된 수입차는 고장 가능성이 크고, 수리비가 비싸기 때문이다.

11년 무사고인 40세 남자(부부 한정 할인)의 보험료를 A보험사에 의뢰한 결과 현대차 제네시스 380(차 가격 6021만원)의 연간 보험료는 58만7790원이고, BMW 528i(6790만원)는 96만8410원, 벤츠 E300 엘레강스(6970만원)는 83만8740원이었다.

◆유지비 비싼 원인=벤츠코리아 관계자는 “부품에 대해 관세를 물어야 하는 데다 아직까지 시장이 크지 않아 1만 종이 넘는 부품을 재고로 떠안는 부담이 커 수리비가 비쌀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수입차 업체 관계자는 “유지비가 많이 들어가는 점을 감안해 통상 신차를 구입한 뒤 2~3년간은 엔진오일 등 기본적인 정비를 무료로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수입차는 공임도 비싸다. 전문인력이 적어 인건비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푸조를 수입하는 송승철 한불모터스 사장은 “중산층이 수입차를 보유하는 시대가 됐는데, 아직 서비스보다 판매 늘리기에만 신경 쓰는 업체가 상당수”라며 “일부 수입차의 경우 정비인력이 모자라 하루 만에 엔진오일을 갈지 못하거나 경정비도 불가능한 경우가 잦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늘어나는 판매에 대응하기 위해 올 2월 서울 성수동에 하루 200대를 정비할 수 있는 서비스센터를 개장했다.

그나마 수입차 가운데 도요타·혼다·닛산 등 일본 업체의 수리비가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국산차 수리비의 1.5∼2배 수준이다. 대형 정비공장을 확보하고 있고, 물류비용이 상대적으로 유럽·미국 업체에 비해 저렴해서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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