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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월 암투병 BBC기자의 '마지막 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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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마지막 일기입니다. 편지를 쓰지 못할 때가 올 것에 대비해 미리 써놓았던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순간이 왔습니다."

영국 공영방송 BBC의 과학전문기자 이반 노블(38.사진)이 27일 독자들에게 보낸 고별 인사다. 그는 2002년 8월 악성 뇌종양 진단을 받은 이후 인터넷(http://news.bbc.co.uk)에 투병 일기를 연재해왔다. 이날 마지막 편지에서 그는"뇌종양 진단을 받은 순간 나의 힘과 의지가 전혀 무의미하다는 무력감이 엄습했다. 그러나 맞서 싸우고 뭔가 희망적인 것을 만들어야겠다는 의욕이 생겼다. 일기를 통해 내가 좋아했던 일과의 인연을 유지해가고 싶었다"며 일기를 게재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또 "나는 속마음을 드러내는 글을 쓰는 스타일이 아닌 데다 내 글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누가 읽어줄지 확신이 없어 처음에는 글을 쓰는데 의문을 갖기도 했다. 그건 자신과의 싸움이었다"며 어려웠던 순간을 회고했다. 그러나 "이제 이 일기가 도움이 되었다는 사람들이 있다. 실시간으로 뜨는 답장과 격려는 어려운 순간마다 큰 힘이 됐다. 내가 예상보다 오래 살아있게 해줬다. 너무 고맙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나는 이제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암과 훌륭히 싸웠고, 결코 암에 패배한 것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마지막 순간이 결코 쉽게 마무리되지는 않으리라 짐작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많은 사람이 내 곁에 있다"며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마지막으로 "암은 극복할 수 있다"고 다시 강조하면서 "내 글을 보고 담배를 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연장된 생명이 투병기를 쓴 나의 보람이 될 것"이라며 글을 맺었다. 글을 본 네티즌들의 격려와 감사 댓글이 쏟아지고 있다. "당신과 당신이 사랑했던 모든 것들을 사랑합니다" "당신의 강인한 정신력을 존경합니다" "당신의 용기로 나는 버텼습니다" "당신의 일기를 읽을 때마다 좀더 나은 남편이 되고자 결심하곤 했습니다" "당신의 겸손하고 교양 있는 일기는 나를 울리고 웃겼습니다"…. 노블 기자는 "아이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더 보고 싶다"고 말해왔다. 그에겐 딸(4)과 암 판정 후 부인과 합의해 낳은 아들(2)이 있다. 그는 시력을 거의 상실한 것으로 알려졌다.

런던=오병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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