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북한은 개혁·개방 강조한 후 주석 충고 경청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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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깜짝 방중(訪中) 뒤 김 위원장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을 다룬 두 나라의 보도문이 서로 달라 눈길을 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후 주석이 이달 초 개최되는 북한 노동당 대표자회의 원만한 성과를 축원했고, 김 위원장은 양국 친선을 대를 이어 강화·발전시키자고 강조했다는 대목을 앞세웠다. 반면 중국 신화통신은 후 주석이 경제교류와 전략적 의사소통의 강화를 강조했고, 김 위원장은 중국의 개혁·개방에 따른 경제발전을 치하했다는 내용을 위주로 소개했다.

강조점이 다른 쌍방의 보도문은 두 나라의 속내가 서로 엇갈린다는 사실을 엿보게 한다. 북한은 중국이 북한의 후계체제에 대해 확고히 지지해줄 것을 강력히 희망한 반면 중국은 북한이 개혁·개방과 비핵화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의 기대치에 부응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서도 속내는 딴판인 것이다. 이 같은 양상은 지난 십수 년의 양국관계에도 투영돼 왔다. 북한은 정치적·경제적으로 중국의 전폭 지원을 기대하지만 중국은 개혁·개방과 비핵화를 사실상 지원의 조건으로 삼아온 것이다.

북한은 핵무기를 체제 유지의 보루(堡壘)로 삼고 있다. 극도로 폐쇄적이고 극단적으로 권위주의적인 체제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북한 지도층은 생각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최악의 선택이다.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북한식 고립정책은 통하지도 않고 성공할 수도 없다. 오히려 국제사회로부터의 따돌림은 심화되고 고통만 커질 뿐이다. 미국은 북·중 정상회담 보도 직후 한층 강화된 대북 제재 방안을 전 세계에 공표했다. 목 조르기 수순에 들어간 느낌이다. 우리 정부도 무조건적인 지원에 나설 뜻이 전혀 없다. 이란이나 쿠바처럼 북한을 도울 능력이 없는 나라들을 빼곤 전 세계 모든 나라들도 똑같은 입장이다. 혈맹(血盟)이라는 중국까지도 북한의 붕괴를 늦추는 이상으로 지원하기는 어렵게 돼 있다.

결국 북한이 살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다.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개발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핵무기를 포기하는 것 이외에 대안은 없다. 정상회담에서 후 주석은 “경제발전은 자력갱생뿐 아니라 대외협력을 떠날 수 없다. 시대 조류에 순응하고 국가발전을 위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충고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중국이 어느 곳이든 생기가 넘친다. (중국의) 정책이 매우 정확했다”고 공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물쭈물할 일이 아니다. ‘천지개벽(天地開闢)’된 세상을 몇 차례나 직접 확인했으면 머뭇거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중국의 발전에 감탄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하루빨리 공존과 번영의 길로 나서길 바란다. 태도만 바꾸면 도와주겠노라고 국제사회가 기다리고 있다. 주민들을 언제까지 굶주림에 내동댕이칠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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