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라 공부] 교과교실제 우수 학교 살펴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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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사고 학생들이 교과교실제를 위해 새롭게 리모델링한 소강의실에서 수학과목 수준별 수업에 몰두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올해 중3 학생들이 치르게 되는 2014학년도 대입수학능력시험 개편안이 발표됐다. 응시 횟수 2회, 탐구영역 축소, 수준별 시험 선택제가 핵심 사안이다. 이에 일부 학교는 벌써부터 수준별 수업을 위한 교과교실제 도입을 검토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지난달 실시된 교과교실제 우수사례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방화중학교와 성사고등학교를 찾아 수준별 수업의 효과를 살펴봤다.

글=김지혁 기자 mytfact@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방화중(교장 김동식)은 지난 1학기에 전 과목 교과교실제를 실시하면서 수준별 수업을 도입해 효과를 봤다. 이 학교는 영어·수학 과목 수업이 진행될 때는 전체 학급을 2개 학급씩 묶어 직전 시험 성적순으로 상·중·하 3개 학급으로 다시 나눈다. 이때 하위권 학생들을 집중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하’반 15명을 먼저 배정한다. 이후 ‘상’·‘중’반에 각각 20여 명의 학생을 배정한다.

김 교장은 “성적으로 학생들을 나눠 반별로 내용을 달리해 가르치기 때문에 수업의 질이 월등히 높다”며 “특히 하위권 학생들의 수업 집중도가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각 교사들이 학생 수준에 맞는 부교재를 직접 만들어 수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학을 예로 들면, ‘상’반에서는 증명 위주의 심화문제 풀이, ‘중’반에서는 개념 응용문제 풀이, ‘하’반에서는 개념 설명 수업으로 나뉘는 식이다.

민소나(영어과) 교사는 수준별 수업을 한마디로 ‘즐기는 수업’이라고 표현한다. “상위권은 상위권대로, 하위권은 하위권대로 수업이 재미있다는 반응이죠. 특히 영어 말하기, 쓰기 실력이 많이 늘었어요. 전에는 수업 중에 부끄러워 말을 못하던 학생들도 자신과 비슷한 성적의 아이들 속에서는 자신 있게 생각을 표현합니다. 물론 더듬거리긴 하지만 모두 당연하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니까 재미있을 수밖에요.” 원어민 영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케빈 에드워드(43) 교사도 “전보다 아이들이 밝아지고 말을 많이 하려는 노력이 보여 요즘에는 수업이 즐겁다”고 말했다. 에드워드 교사는 다른 영어과 교사들과 함께 중·하위권 학생반 수업을 위해 별도의 멀티미디어 교재를 만들었다. 학생들의 흥미를 높이기 위해 게임 등으로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다.

수준별 수업 덕에 영어·수학 점수가 평균 10점 이상 올랐다는 장지수(3년)양은 “전에는 선생님을 만나려면 교무실까지 가야 해 좀 꺼려졌는데, 요즘에는 그냥 교실로 찾아가면 되니까 질문 기회가 훨씬 많아졌다”며 “쉬는 시간에 못 쉬는 게 흠이긴 하지만 공부에 더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각 교과교실에는 수업에 필요한 교구나 기자재 등이 이미 갖춰져 있어 교사가 수업 준비에 허비하는 시간을 아낄 수 있다. 또 교실에 들어오는 학생과 과목이 한정돼 있다 보니 과제물 등 학생들의 포트폴리오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됐다. 교사가 교실에 상주하면서 학생들 간의 마찰이나 ‘왕따’ 등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이점이다.

농촌 인근 지역에 위치해 매년 기피 대상 학교였던 경기도 고양시의 성사고(교장 차종석)도 교과교실제 수업에 힘입어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학교로 급부상했다. 이 학교는 수준별 수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기존의 교실을 용도에 따라 쪼개고 넓히는 등 리모델링을 감행했다. 이를 바탕으로 영어·수학 전 학년 수준별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1학기 말, 전교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학생 84%, 학부모 88%가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성적 면에서도 하위반에서 중위반 또는 중위반에서 상위반으로 반이 바뀐 학생이 평균 55%로 조사돼 성적 향상 효과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김종래 교감은 “반별 인원수가 정해져 있어 등급이 하락한 학생도 있지만 이 학생들도 점수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전반적인 실력 향상이 이뤄지고 있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성사고는 교과교실제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학생들이 원하는 교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교사 선택제도 운영 중이다. 또 토요 특강을 통해 교내 ‘공신’ 교사들로부터 무학년 강의를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전국적으로 647개 중·고교에서 실시 중인 교과교실제가 교과부 방침대로 800개까지 확대되기에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학교의 의지만 있다면 제도 도입에 어려움이 없지만 제대로 시행하려면 최소한 현재 보유 학급의 1.5배 이상의 교실이 필요하다. 또 학급이 늘어나면 자연적으로 교사 수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시간제 강사를 확보하면 되지만 강사료가 턱없이 적어 적임자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것. 거기다 해가 바뀌면 다른 학교로 옮겨가는 강사들 때문에 학생들의 안정적인 학습 관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도입 초기에 교사들의 과도한 업무 부담도 문제다. 수준별 교재와 필요한 기자재·교구 등을 만들고 수업 연구도 끊임없이 이뤄져야 한다.

수준별 수업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선 수준별 출제시스템도 갖춰야 한다. 현재 방화중을 비롯한 일부 학교에서는 ‘세트형’ 문제를 개발해 시험 중이다. 한 문제에 상·중·하 세 개의 문제가 속해 있는 방식이다. 학생들은 서로 다른 배점이 매겨져 있는 세 문제 중 자신 있는 문제를 풀면 된다. 하지만 교사들의 문제 출제 부담이 높아 현실적으로 지속하기 힘들다. 이를 위해 교과교실제 시행 학교들 간에 문제은행을 만들어 공유하는 방식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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