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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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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쌀로 밥만 지어먹는 게 아니다. 고대 힌두교도들은 거짓말쟁이를 ‘쌀알 테스트’로 가려냈다. 쌀알을 씹은 뒤 뱉어내면 참말, 못 뱉으면 거짓말이라 판별했다. 거짓말할 땐 불안해서 침이 잘 나오지 않기 때문에 쌀알이 잇몸에 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다는 거다.

현대적인 거짓말탐지기를 처음 만든 건 1920년대 미국 심리학자 윌리엄 몰턴 마스턴이었다. 거짓말하면 혈압이 올라간다는 점에 착안해서 최고 혈압을 재는 기계를 발명했다. 혈압의 높낮이와 함께 호흡의 빠르기, 땀 배출량 등 생리적 활동을 종합 측정하는 최신 탐지기의 시조 격인 셈이다.

40년대에 만화책 작가로도 데뷔한 마스턴이 창조한 전설적 캐릭터가 ‘원더우먼(Wonder Woman)’이다. 배트맨·수퍼맨처럼 남자 영웅만 판치던 만화계에 최초로 등장한 여성 수퍼 히어로였다. 그녀의 최강 무기는 바로 ‘진실의 올가미’. 이 마법의 올가미 밧줄로 꽁꽁 묶어 매면 그 어떤 악당이라도 한 치의 거짓 없이 진실을 고해야 했다.

안타깝게도 거짓말탐지기는 원더우먼의 밧줄과 달리 오류가 많다는 게 정설이다. 병적인 거짓말쟁이일수록 아무런 신체적 변화도 없이 탐지기를 감쪽같이 속여 넘긴다고 한다. 마크 트웨인의 말마따나 진실을 드러내는 건 “거짓말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얘기일 뿐”이다.

한술 더 떠 자기 스스로조차 속여 넘긴 경우라면 진실과 거짓의 분간은 더더욱 어려워진다. 진실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걸 믿으려 드는 게 인간의 속성인 탓이다. 기억은 종종 소망에 굴복한다. 정치인들의 잦은 거짓말도 “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 때문”이라고 벨라 드파올로(캘리포니아대·심리학) 교수는 지적한다. 어쩌면 우리 총리 후보자를 낙마하게 만든 말 바꾸기 역시 간절한 바람과 기억이 뒤섞인 결과는 아니었을지. 그러나 그 어떤 탐지기보다 강력한 물증들 앞에서 결국 진실은 드러나고 말았다.

청문회장 말고도 곳곳에서 진실 공방이 지루하게 펼쳐지는 요즈음이다.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 김연아 선수, 대한산악연맹과 산악인 오은선씨가 대표적이다. 양편 중 어느 한쪽은 거짓을 말하고 있을 텐데 지켜보는 이들로선 판가름이 좀체 쉽지 않다. 청문회를 열어 밝힐 수도 없으니 더 이상 진실한 편이 억울하지 않게 원더우먼이라도 나서 주면 안 되려나.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