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의혹 후보자 사퇴 … 더욱 엄격한 공직기준 계기 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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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8·8 개각은 실패로 끝났다. 어제 김태호 총리 후보자와 신재민 문화관광부·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가 ‘자진사퇴’ 형식으로 물러났다. 그동안 청문회를 지켜본 사람들은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일 것이다. 공직자로서 가장 경계해야 할 거짓말이 수없이 반복되고, 위장전입, 투기(投機), 탈세(脫稅), 공사(公私)의 혼돈 등 후보자들이 남긴 의혹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위 공직을 맡아서는 제대로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이제라도 민심을 수용한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이들이 사퇴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 무엇보다 그토록 많은 의혹을 드러낸 후보자들을 끌어안고 가려 한 청와대의 공직에 대한 인식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를 후반기 국정운영 지표로 제시했다. 공정한 사회는 특권층이 없어야 한다. 오히려 사회지도층에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한다. 그런데도 ‘관행(慣行)’이란 이름으로 고위공직자에게 불·탈법을 눈감아준다면 공정한 사회는 빈 구호가 될 수밖에 없다. ‘쪽방촌’에 투기한 경제부처 장관이 있는 한 ‘친(親)서민’은 웃음거리다.

더군다나 역대 대통령을 돌아보면 임기 3년 차부터 측근들의 부패에서 임기 말 현상(레임덕)이 시작됐다. 이것을 감시하고 공직기강을 바로잡아야 할 사람이 총리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내각은 공직자로서 모범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을 앞세워 공직비리에 대해 엄정한 잣대로 단속을 해야 옳다. 그런데 편법으로 특권을 누리고, 온갖 비리 의혹에 대해 제대로 해명도 못하면서 거짓말을 반복하는 총리를 임명해 놓고 어떻게 정부의 영(令)이 설 것이며, 공직기강인들 바로 세울 수 있겠는가.

다행히 총리 후보자와 두 장관 후보자가 사퇴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사태를 이 지경으로 몰고 온 시스템을 엄밀히 점검해 바꾸지 않고는 이 같은 잘못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인사 검증팀이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야당 의원들과 비교를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야당 의원들이 그처럼 쏟아낸 의혹을 가려내지 못한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 한다. 심지어 한 후보자는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을 이미 청와대 검증팀에도 알렸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인사 검증팀이나 임명권자가 그런 사실을 알고도 내정했다는 말이다. 청와대의 도덕적 기준과 국민의 기대 사이에 너무나 큰 괴리(乖離)가 있는 것이다. 일만 잘 하면 된다는 ‘실용주의’의 산물은 아닌지 철저히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다음 후보는 더욱 엄정한 검증을 통해 국민의 기대 수준에 맞는 후보를 내놔야 한다. 경력관리용이나 정치적 견제용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측근인사들의 회전문 인사나 검증을 건너뛴 깜짝쇼도 곤란하다. 또다시 국민에게 실망을 안긴다면 현 정부뿐 아니라 현 여권의 도덕성과 인력 구조는 심각한 불신을 받게 될 것이다.

공직자나 공직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이번 개각 파동을 스스로 도덕성을 재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 대통령도 27일 “청와대(소속 공직자)는 정책 마련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공정한 사회’에 걸맞은 행동을 하는지 스스로 되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이 요구하는 도덕성은 훨씬 높아졌다. ‘관행’이란 이름으로 불법·편법을 용인받던 시기는 지나갔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맞지 않다면 스스로 공직을 포기하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