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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마크 모비우스 프랭클린템플턴 이머징마켓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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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74세의 마크 모비우스 회장은 지난 26일 하루 동안 베트남 호찌민시 인터콘티넨털 아시아나 호텔에서 한 차례의 강연, 그리고 세계 6개 언론사와 개별 인터뷰를 하면서도 전혀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권혁주 기자]

-제일 투자 유망한 시장을 꼽는다면.

“프런티어 마켓이다. 신흥시장은 많은 이들이 들여다보지만 (신흥시장의 마이너리그쯤 되는) 프런티어 마켓은 아직 잘 모른다. 연마하지 않은 다이아몬드 원석 같은 존재다. 그중에서도 파키스탄이 좋아 보인다.”

-파키스탄의 강점은.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섬유·기계 산업이 강하고 인재도 많다.”(파키스탄은 2009년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도 2.7% 성장했다.)

-이슬람 국가들은 종교 갈등 등 정치·사회가 불안한 게 문제인데.

“파키스탄은 군사력이 튼튼하고 통치권도 안정돼 있다. 나랏빚이 (신흥국치고는) 좀 많은 편인데 채무 조정을 하고 있다.”(파키스탄 공공부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은 2009년 말 현재 45%. 한국은 35%다.)

-프랭클린템플턴이 파키스탄에 투자하는 펀드를 운용하고 있나.

“몇몇 프런티어 마켓 펀드와 아시아 펀드에 파키스탄이 들어 있다. 파키스탄과 더불어 나이지리아도 유망하다고 본다.”

-투자자들이 프런티어 마켓에 대해서는 정치권을 신뢰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선진국은 신뢰할 만한가. 정치권을 믿기 힘든 건 세계 어디든 마찬가지다. 물론 프런티어 마켓에 투자할 때는 이익을 본국으로 보내기 쉬운지, 세금은 어느 정도인지를 사전에 파악해야 한다.”

-브릭스 국가는 어떤가.

“중국·브라질·러시아·인도 모두 경제성장이 빠른, 좋은 투자처다. 하지만 프런티어 마켓이 상대적으로 낫다고 본다.”

-원자재 가격은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계속 오른다(Up and up). 단기적으로는 출렁거리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원자재는 좋은 투자처다. 전 세계적으로 풀린 돈이 많아 화폐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점도 원자재의 매력을 높여준다.”

-특히 어떤 원자재가 유망한가.

“금·백금·원유 모두 오를 것이고, 특히 팔라듐이 많이 오를 것이다(Gold up, Oil up, Palladium up up up).”(팔라듐은 전자회로 기판 등에 사용되며, 특히 자동차 매연 저감장치에 쓰이는 백금을 대체할 물질로 각광받고 있다.)

-한국의 코스피지수 전망은.

“더 오를 공산이 크다(good possibility). 다만, 많이 오르기 위해서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 한국 시장이 다른 신흥시장보다 저평가된 이유도 바로 기업 지배구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일부 오너 기업의 불투명한(opaque) 의사결정 구조가 문제다. 배당은 적게 하면서 (기업의 외형을 불리는) 투자는 끊임없이 한다. 때론 전혀 수익성 없는 사업에까지 투자를 한다. 이건 주식 투자자들 입장에서 볼 때 심각한 문제다. 경영진이 뭘 어떻게 할지 예측하기 어려우니까.”

-언제쯤 이런 문제가 사라질 것이라고 보나.

“이건 한국의 독특한 경제문화 중 하나다. 오너들이 강력한 리더십을 갖고 거듭 투자를 했기에 오늘날 한국에 삼성·현대차·LG가 있는 것이다. 뿌리 깊은 문화여서 쉽사리 없어지기 힘들겠지만, 천천히 조금씩 사라지지 않겠나.”

-예전에는 신흥국 주식시장이 미국과 함께 움직였다. 그러나 근래 들어서는 따로 움직이는 경향이 강해졌는데 이유가 무엇인가.

“우선 중국부터 보자. 중국 내국인 투자자들은 미국이 아니라 자국의 동향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그만큼 중국 경제가 커졌다. 그래서 주식시장도 독립적으로 움직인다. 또 한국 같은 아시아 신흥시장은 미국보다 중국 의존도가 더 높아지고 있다. 아시아 신흥국들의 주식시장이 미국보다 중국과 밀접하게 움직이는 경향은 갈수록 심해질 것이다.”

-최근 들어 미국 부동산 시장의 부진 때문에 더블 딥 우려가 커지고 있다.

“내겐 더블 딥이 보이지 않는다(I don’ see that). 부동산 말고 미국의 다른 산업은 상황이 좋다. 최근 기업들이 많이 상장하는 것을 봐도 그렇다. 더블 딥이 올 것이라고 예상한다면 줄지어 상장을 하지 않을 것이다. 또 대공황의 경험에서 나온 ‘더블 딥’은 진짜 경기가 고꾸라졌을 때(real deep)에나 쓰는 말이다.”(모비우스 회장은 일부 비관론자들이 적절치 않게 ‘더블 딥’을 남발한다는 뜻으로 ‘real deep’이란 표현을 썼다. 1930년대 초반 대공황 시기의 더블 딥 때 미국 경제의 연간 성장률은 -13~-6%를 기록했다.)

-미국 정부가 올해 말 중간선거를 앞두고 재차 경기부양책을 펼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충분히 있다. 하지만 그 규모가 얼마나 될지 예단하기는 어렵다. 한가지, 추가 부양책은 생산적인 산업과 사회기반시설(인프라)에 투입돼야 한다. 돈이 더 풀려도 그로 인해 생산성이 높아지면 물가상승 압력이 떨어지고 인플레이션 우려도 낮아진다.”

-남유럽 재정위기가 다시 불거질 위험은 없나. 국가 부도 위험 같은 것 말이다.

“중국이 스페인과 그리스 국채를 대량 사들이는 것을 어떻게 보나. 이들 나라 국채가 위험하다고 여기는 게 아니라 (저평가돼 사들일) 기회라고 중국이 생각하는 것 아닌가.”

-투자에 철칙이 있다면.

“기업의 제 가치보다 쌀 때 사서 제값을 받을 때 파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용기와 인내가 필요하다. 남들이 팔 때(그래서 싸질 때) 사고, 남들이 살 때 팔아야 한다. 5년 정도를 내다보고 이렇게 가치투자를 하는 게 좋다. 프랭클린템플턴이 바로 그렇게 투자해 좋은 결과를 얻고 있다.”

호찌민=권혁주 기자



‘대머리 남자 돈 잘 번다’ 중국 속설 듣고 머리 빡빡 밀고 다니는 ‘흰머리 독수리’

마크 모비우스 회장의 별명은 ‘피리 부는 사나이(Pied Piper)’다. 피리 부는 사나이가 마을의 골칫거리인 쥐떼를 없애줬다가 약속한 상금을 받지 못하자 아이들을 데리고 사라졌다는, 독일 동화에서 따온 것이다. 아이들이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가듯 신흥시장 투자자금도 모비우스 회장을 따라다닌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흰머리 수리(Bald Eagle)’란 별명도 있다. 배우 율 브리너처럼 머리를 밀고 다닌 까닭이다. 1970년대 초반 홍콩에서 일할 때 “대머리 남자는 돈을 많이 번다는”는 중국의 속설을 듣고 머리를 민 게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1936년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비교적 고령(74세)에도 불구하고 1년에 200~250일을 신흥국 출장으로 보낸다. 현지를 둘러보고 기업인들을 만나야 정확한 투자 여건을 판단할 수 있다는 지론에 따른 것이다.

해외 출장 때는 꼭 헬스클럽이 있는 호텔에 묵으며 하루 1시간 정도 운동을 한다. 끊임없이 운동을 해서인지 그의 굵은 팔뚝은 ‘뽀빠이’를 연상케 할 정도였다. 반팔 티셔츠의 소매는 터질 정도로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나이가 있어 프랭클린템플턴 그룹에서) 후계자를 기르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주식 전문가가 되기 전인 63~64년에 미국 마케팅 조사 회사의 직원으로 1년 반 동안 서울에 머물렀다. 그는 “여관의 온돌방에서 지냈다”고 회고했다. 또 “당시 부산과 목포에 갓을 쓴 양반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한국은 정말 빠르게 변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시아 신흥국에서의 마케팅 조사 경력을 바탕으로 70년대 초반 신흥국 주식시장 투자 컨설팅을 시작했으며, 87년 템플턴에 합류했다.

모비우스 회장이 요즘도 새로운 시장을 찾아 신흥국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것에 대해, 그의 전기를 쓴 한 일본 작가는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피가 흐르기 때문’이라고 서술하기도 했다. 모비우스의 모친인 마리아 루이자 콜론은 콜럼버스의 후손인 것으로 알려졌다.

호찌민=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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