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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노조 동의' 단협 탓 직원 재배치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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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기아차 노조의 채용 비리를 계기로 노조의 인사 개입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미국의 경우 인사권을 경영자의 고유권한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독일 등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는 노조가 신입사원의 채용에 부분적으로 간여하기도 한다. 한국의 일부 기업에서 노조는 직원뿐 아니라 경영진의 인사에도 영향력을 행사한다. 기아차 노조 사태가 터지자 노동계에서조차 자성의 소리가 나온다.

◆ 직원 재배치도 노조와 상의=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선 지난해 '투싼'의 생산량을 늘리려다 노조가 반대하는 바람에 포기하는 일이 벌어졌다. 회사 측은 잘 안 팔리는 차종의 생산라인 인력을 투싼 생산라인에 투입하려고 했다. 그러나 잔업 수당의 감소를 걱정한 투싼 생산라인의 근로자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신규 인력을 투입하지 못했다.

노조가 이렇게 힘을 발휘한 것은 2004년 체결한 임금단체협상 때문이었다. 임단협에 따르면 같은 공장 내에서 라인 조정과 인원 재배치, 신기술을 도입할 때는 노조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사측이 노조에 밀려 인사권 개입을 허용하면 노조가 그 권한을 남용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의 권한 남용 케이스는 기아차에서만 발생했던 것이 아니다. 2003년엔 LG화학 여수공장의 전.현직 노조 수석지부장 2명이 취업을 미끼로 구직자들로부터 1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노조 측은 개인 비리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여수 지역에서는 대형 석유화학 업체에 입사하려면 노조에 선을 대는 게 유리하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 경영진 인사도 간여=주인이 불분명한 일부 공기업 노조는 기관장 임명이나 신규 채용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인천국제공항은 3년 전 '신규 채용이나 특채 등에 대해서는 노조와 반드시 협의한다'는 단체협약을 맺었다.

인천공항공사 고위 관계자는 "임기제 사장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고 노조의 요구를 모두 들어줬다"며 "공기업은 대부분 노조가 인사에 개입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정부가 지분을 보유한 한 은행의 노조는 은행장 공모를 앞두고 후보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노조는 "한국은행 출신보다는 차라리 관료 출신이 낫다"며 노골적으로 행장 선임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 외국은 어떤가=노조의 경영 참여가 활발한 독일은 수습사원의 훈련을 경력 노조원이 맡는다. 이 과정에서 노조는 자연스럽게 채용 과정에 참여한다. 노조는 또 사용자 측과 함께 사업장평의회에 참석, 채용과 관련된 노조의 의견을 제시한다.

미국의 노조는 인사에는 개입하지 않고 오직 임금.노동시간.고용조건만을 단체교섭의 대상으로 삼는다.

일본에서는 노조의 인사개입 정도를 노사 간의 자율 협의를 통해 결정한다. 도요타 자동차 노조의 경우 사업장 인원 배치 등에 관해 사측과 협의하지만, 협의의 대전제는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런 일본에서도 노조가 인사에 지나치게 개입하다 낭패를 본 기업이 있다. 한때 일본 최대의 유통재벌 중 하나였던 소고백화점은 노조위원장이 22년간 재임하며 인사 등 회사 경영에 직접 개입했다. 이 회사는 결국 2000년에 부도가 났는데 노조의 지나친 경영 개입이 기업 부실을 키웠던 것으로 분석됐다.

정철근.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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