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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편 보고 가세나] 33. 오정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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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 '서편제'에 출연한 김규철(右)과 오정해는 1995년 제31회 대종상 시상식에서 남녀 신인상을 받았다.

요즘 '연예계 X파일'이라는 게 떠돌면서 뒷말이 무성하다. 본의 아니게 피해를 보는 연예인도 많은 것 같다. 분하고 억울할테고,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대가치고는 가혹하다는 생각도 들 터이다. 연예계엔 별의별 인간이 다 있다. 성실하고 정직한 이도 있고, 문제 투성이의 대책 없는 인간도 있다. 영화나 드라마, CF에서 보듯 모두가 선남선녀는 아니다. 그러나 연예인은 이미지를 팔아먹고 산다. 실제 행실이 어떻든 신비로운 존재로 포장되고 상품화 되어야 한다. 그래야 연예산업이 산다. 지금처럼 연예계가 타락한 이들만 우글거리는 곳으로 비쳐져선 누구에게도 득 될 게 없다.

오정해를 처음 만났을 때 몹쓸 곳에라도 온 양 잔뜩 움츠려 있던 걸 기억한다. 저녁 식사를 하자고 해도 약속이 있다며 매번 퇴짜를 놓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얘, 영화계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 몸조심해야 한다"며 주변에서 하도 겁주는 바람에 피해다녔다는 것이다.

오정해는 '서편제' 한 편으로 영화계에 우뚝 선 신데렐라였다. 하지만 연예계에 나가고 싶어 안달이 난 아가씨는 아니었다. 판소리 무형문화재인 김소희 선생의 마지막 제자인 그는 국악에 인생을 걸고 있었다. 중1 때 전주대사습놀이 학생 부문에서 장원을 한 뒤 고향 목포를 떠나 서울의 김 선생 문하에서 호된 수련기를 거쳤다.

애초 임권택 감독은 그를 '태백산맥'의 소화 역으로 찍어두었다. 1992년 '장군의 아들' 3편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다. 임 감독의 눈이 TV로 쏠렸다. 전북 남원에서 춘향선발전을 중계하는데 한 애가 돋보였다. 조감독이던 김홍준에게 지시했다. "쟤를 좀 알아봐라. 나중에 쓸 곳이 있겠다." 다음 작품으로 '태백산맥'을 생각했던 임 감독은 오정해에게 씻김굿을 시킬 요량이었다. 그러나 '태백산맥'이 정부 압력으로 엎어지면서 '서편제'로 방향을 틀었다.

그 무렵 오정해는 서울 대학로에서 '하늘 텬 따 지'라는 연극에 출연하고 있었다. 임 감독과 나는 소극장을 찾아 맨 뒷좌석에 앉았다. 국악과 가요를 넘나들고 장고같은 악기도 능숙하게 다루는 만능 재주꾼이었다. 연기가 좋고 끼도 많다는 걸 발견한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서편제' 주연으로 꼽았다.

'서편제' 제작발표회 때였다. 기자들이 한마디씩 했다. "아니, 이 사장. 저런 얼굴로 뭘 하려고 그래요? 그림이 안 되잖아요." 의상도 태가 안 나는 데다 얼굴도 평범해 주연 여배우로는 영 아니라는 얘기였다. 그러나 임 감독이 누군가. 처음엔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어색해서 제대로 연기가 안 되는 그를 서서히 영화 속에 녹아들게 만드는데, 입이 딱 벌어졌다. 다음해 청룡영화제에서 신인여배우상을 탔다. 기자들이 또 한마디씩 했다. "이 사장, 견적 얼마 나왔어요?" 1년 새 태가 완전히 바뀌었으니 오정해가 성형수술이라도 한 줄 아는 모양이었다. 배우는 그렇게 탄생하는 것이다.

오정해는 맹랑한 구석이 있다. '서편제'를 본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출연진과 식사를 했다.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에서 막 귀국했을 때였다. 오정해의 판소리를 듣고 반한 그는 농반진반으로 결혼할 때 주례를 서겠다고 했다. 5년 뒤 결혼을 앞둔 오정해는 정말 DJ를 찾아갔다. "그때 한 약속 지키셔야죠." DJ는 대통령 선거에서 이겨 취임을 앞두고 있었다. 아마 대통령 당선자를 주례로 세운 건 오정해 밖에 없을 것이다.

이태원 태흥영화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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