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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문서 공개 "기준 제각각" "의혹 불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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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치권은 물론 시중에 '박정희 때리기'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상황은 동시다발로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최근 박정희 전 대통령 당시의 주요 외교문서를 연이어 공개했다. 서울과 지방에선 그의 친필 현판들이 내려지고 있다. 10.26을 다룬 영화 시사회도 열렸다. 이에 앞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박 전 대통령이 조사 대상에 포함되는 친일진상규명법의 국회 통과를 주도했다. 박정희 정권 당시의 인권탄압 사례 등을 조사하는 과거사기본법도 밀어붙이는 중이다.

지난 17일 공개된 한.일 협정 문서는 일제 당시 피해자들의 개인보상금을 정부가 전용한 내용이 담겨 있다. 20일 배포된 문세광 저격사건 문서는 박 정권이 이 사건을 김대중 납치 사건을 희석시키는 데 활용하려 했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야당은 문서 공개의 정치적 배경에 의구심을 보이는 반면 외교통상부는 "적법절차에 따른 공개며 정치적 목적은 없다"고 펄쩍 뛴다.

# "단순 공개" 공개된 두 문서는 각각 별도의 심의절차를 거쳤다. 2004년 2월 13일 법원이 한.일 협정 관련 5개 문서 공개 판결을 내린 뒤 정부는 9월 대책반을 만들었다. 1996년 첫 심사를 거쳐 '비공개' 판정을 받은 161개 협정 관련 문서는 2001년에도 '공개 불가'판정을 받았고 다시 재심을 받으려면 2006년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공개판결 뒤 압력이 거세 이를 검토하기 위해 대책반을 만들어 지난해 12월 28일 공개를 결정했다는 설명이다.

대책반은 외교.재경.보건복지.행자부, 국무조정실.청와대 시민사회 수석실 등 6개 부서로 구성됐다.

외교부 관계자는 "논의 과정에서는 보상 문제와 대응방안이 집중 거론됐으며 박 대통령 평가 문제는 한번도 언급되지 않았다"면서 "나머지 156개 협정 관련 문서 공개 여부는 외교부 단독으로 검토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 심의팀엔 민간인도 포함될 것이라고 한다.

'문세광 저격사건' 문서는 '외교문서 공개에 관한 규칙'에 따라 공개됐다. 작성 30년이 지난 문서는 이 규칙에 따라 공개된다.

외교부 차관이 위원장인 문서공개심의회의를 거쳐 30년이 경과한 해의 다음해 1월이 공개시점이 된다. 외교부 관계자는 "심의는 기계적인 절차에 가까우며 정치적 고려가 개입될 여지가 없다"면서 "내년 공개될 문서도 같은 방식으로 심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 "정교한 시나리오" 그러나 외교부의 이런 설명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우선 문서공개 관련 재판의 항소심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협정 문서를 공개한 것은 청와대와 여당의 '과거사 정리'를 뒷받침하려는 정치적 고려가 담겼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항소 결과를 기다려도 결론은 뻔하며 시간만 끌게 될 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정치권, 특히 한나라당이 가장 강도 높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야당 일각에선 최근 공개된 문서와 광화문 현판 교체, 국가정보원과 검찰.경찰.국방부의 과거사 조사작업이 결국은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 대표를 겨냥하고 있다는 불만을 노골적으로 털어놓고 있다.

전여옥 대변인은 25일 "박정희 정권 당시의 사안이 잇따라 터져나오는 배경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박근혜 대표를 겨냥한 정교한 시나리오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박 대표가 야당 대표가 아니었으면 지금과 같은 일들이 벌어졌겠느냐"고 반문했다.

박 대표는 "과거의 진실규명은 역사학자들에게 맡겨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해야 한다. 정치권이 개입해 이를 악용하려 들면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성규.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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