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2. 안과 바깥 <84>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그물을 걷어내니 손바닥만한 은어 서너 마리가 녹색의 등과 흰 뱃바닥을 뒤집으며 펄떡거리고 있었다. 성진이의 투망 솜씨는 점점 익숙해졌다. 우리는 얼마 안 가서 양동이에 반이나 차오르도록 은어, 모래무치 따위의 물고기들을 잡았다. 셋은 부근 밭에 가서 깻잎 따오고 가져온 마늘과 된장, 고추장으로 즉석에서 은어 회를 쳐먹었다. 은어는 머리와 꼬리만 잘라내고는 그대로 내장을 씻어내고 장에 찍어 먹었다. 성진이가 불평을 하여 광길이가 마을 어구의 구멍가게에서 소주도 사와서 우리는 제법 취하도록 마셨다. 어른들 보기에 마빡에 피도 마르지 않은 고등학생 녀석들이 대낮부터 취해 가지고 옷들을 모두 훌러덩 벗어버렸다. 그리고 시냇물 속에 첨버덩 뛰어들거나 기슭을 따라 모래밭을 벌거숭이로 뛰어다녔다. 이때 삼삼오오 무리를 지은 사람들이 개울 건너편으로 몇 차례인가 지나갔는데 이날이 바로 사일구 이후 칠월 말의 민참의원 선거 날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물론이고 이웃 마을 사람들까지 뉘집 자식들인지 머리통 큰 놈들이 대낮에 발가벗고 술 취해서 소동을 벌이더라는 말이 돌았다. 이 일은 광길이네 시골의 실제 집사나 다름없는 셋째 작은아버지 귀에 들어갔고 할아버지에게까지 보고가 올라갔다. 우리가 길고 무더운 여름날 오후를 잘 보내고 저녁 먹을 무렵에 슬슬 돌아오니 아니나 다를까 아까부터 할아버지가 찾는다고 아낙네들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광길이와 함께 사랑 툇마루에 가서 꿇어앉아 할아버지로부터 호된 야단을 맞았다. 저녁 먹고 마당에 나가 앉아 멍석 위에서 노닥거리는데 작은아버지가 어디서 막걸리 닷 되들이 한 병을 들고 와서 넌지시 전해주며 일렀다.

-술 먹고 잡으먼 집에서 묵어야제. 촌이서는 놈덜 눈이 있응게. 글고 술은 조은 음석잉께 담엘랑 옷덜 입고 묵어라잉.

밤 늦게까지 다시 막걸리 몇 사발씩을 마시고 모두들 평상과 멍석에 흩어져 누워서 별을 보며 해롱거리고 노래도 부르다가 잠들었는데 새벽녘에 깼다. 썰렁하기도 했지만 도무지 모기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우리는 사랑방의 할아버지 방으로 기어들어가 모기장을 들치고 윗목에 널브러져서 다시 잠들었다. 아침에 깨어나니 성진이의 얼굴이 가관이었다. 모기에 물린 자리가 부어올라서 눈두덩과 콧등이 온통 펑퍼짐했다. 모두들 저게 누구냐고 묻는 시늉을 했다.

당시만 해도 거의가 비포장 도로에 가장 넓은 국도라는 것이 일제 때에 닦은 신작로 이차선이었지만 국도 변에는 언제나 싱그러운 포플러나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서있었다. 시골 사람들은 포플러를 우리 말로 바꾸어 미루나무라고 했고 플라타너스를 방울나무라고 불렀다. 우리는 이런 길을 지나고 아슬아슬하게 넘어 가는 산굽이 길을 돌아서 호남의 한복판으로 들어갔고 광주를 거쳐서 남으로 내려갔다. 그후 몇 년 지나지 않아서 나는 남도를 방랑했으며 나중에는 전라도에 십여년간 살기도 했지만, 전라도는 땅 색깔부터가 다르다. 어느 무너진 골이나 파헤쳐진 논두렁의 흙가슴 속은 짙붉은 황토다.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