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核 파문' 美 전문가 5人의 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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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북한의 핵 동결 해제 선언이 알려진 12일 워싱턴의 싱크탱크와 학계의 북한 전문가들은 충격 속에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이들의 1차적 판단은 강경·온건파를 막론하고 "제네바 합의는 수명을 다했고,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우선 강하게 나가겠지만 구체적 방법론에서는 국제적 압력과 고립, 대화와 협상 정도의 수단밖에 없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다음은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워싱턴 내 한반도 문제 전문가 5인과의 긴급 인터뷰 요지.

편집자

◇돈 오버도퍼(존스홉킨스대 선임연구원)=부시 행정부의 1차 대응은 한국의 대선이 끝난 뒤에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지금까지 가해온 국제적 압력의 강도를 더욱 높여가는 방향일 것이다.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체제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불가침조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약속의 대상이 아니라 상호 노력의 대상이다. 더욱이 불가침조약은 세계에서 유례없는 독재정권을 미국이 공인하는 꼴이 된다. 그렇다고 미국이 군사공격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부시 대통령은 이미 평양을 공격할 의도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유엔을 통해 제재와 압력을 가할 가능성도 있지만 이는 북·미 간 접촉이 먼저 이뤄진 뒤의 일이다.

◇니컬러스 에버스타트(미 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국제법상 조약도 아닌 제네바 합의를 누가 먼저 어겼느냐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규정 상으로는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 개발이나 중유 공급 중단, 핵 동결 해제도 못하게 돼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 간의 신뢰다.

북한의 이번 발표는 과거 패턴으로 볼 때 한국의 대선과 관련이 있다. 북·미 간 긴장을 고조시켜 한국 내 반미감정을 더욱 부추기고, 그래서 한국과 미국을 더욱 떼어놓으려 했을 수 있다. 미국으로부터 체제보장을 얻어내기 위해 북한은 앞으로 단계적으로 원자로의 실제 가동, 미사일 실험 재개와 같은 카드를 구사하며 "이래도 안할래"라는 식으로 계속 미국을 압박해 올 것이다.

◇래리 닉시(미 의회조사국 선임연구원)=이번 선언은 사실 제네바 합의의 종식 선언이다. 북한은 제네바 합의로는 체제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고 본다. 이 와중에 미국의 압력이 강화되고 게다가 돈줄이었던 미사일 수출까지 사실상 막히게 되자 새로운 차원의 포괄적 협상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중 하나가 북·미 간 불가침조약 체결이지만 한반도 문제의 최대 당사자인 한국을 결코 배제하지 않겠다는 것이 미국의 변함없는 원칙이다. 불가침조약은 한국을 무력화할 위험이 있다. 한국민들은 북한의 이 같은 이중적 태도를 지적해야 한다.

◇마커스 놀랜드(미 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겉으로는 중유 공급이 중단된 데 따라 불가피하게 핵 시설을 재가동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진짜 속셈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있다.

그러나 미국으로서 당장은 국제사회를 통한 압력 외에 별다른 수단이 없다. 이라크전을 목전에 둔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단을 내쫓거나 영변 핵 시설을 실제 가동하지 않는 한 당분간은 사태 악화를 피하면서 시간을 벌려 할 것이다. 본격적인 대응책은 이라크전 이후에 나올 것이다. 북한의 경제상황은 더 이상 고립주의를 외칠 형편이 못된다. 그런데도 북한 정권이 이런 식의 위협전략을 계속 구사하는 것은 자신들의 묘혈을 파는 것이다.

◇조엘 위트(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수석연구원)=북한의 이번 발표는 북한 화물선 나포나 한국의 대선과 관계가 없고, 중유 공급 중단 이후 치밀한 전략 아래 나온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당장은 강경한 모습을 보이겠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대화와 협상을 병행할 것이다. 이제 공은 미국으로 넘어 왔다. 문제는 대화를 통한 평화적 방법 외에는 특별한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북한 김정일(金正日)정권의 성격상 설사 대화를 한다고 그들이 진정으로 변하겠느냐는 점이다.

워싱턴=이효준 특파원

joon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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