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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옥 주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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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주교의 권위 없이는 성만찬도 교회도 없다. "

성(聖)이그나티우스가 서기 107년 편지에서 강조한 성직자의 중요성이다. 주교가 곧 교회며 기독교란 주장이다. 안티옥(고대 시리아의 수도)의 주교였던 그는 굶주린 사자에 잡아먹히기 위해 로마로 압송 당하던 와중에 띄운 7편의 편지를 통해 초기 기독교의 주춧돌을 놓았다.

일찍이 성인이 강조한 권위는 전적으로 '주교(主敎·Bishop)'의 몫이다. 주교는 예수의 열두명 제자, 곧 12 사도(使徒·Apostle)의 후계자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권위는 12 사도를 통해 세상에 전해졌고, 사도들의 권위는 주교들을 통해 계승된다. 교황 역시 주교의 하나며, 특별히 12 사도 가운데서도 맏형인 베드로의 후계자로 불린다. 추기경은 교황 선출권을 가진 주교.

그래서 초기 기독교에선 주교만이 예배를 집전할 수 있었다. 우리가 흔히 교회에서 만날 수 있는 일반 사제(司祭)는 기독교도가 늘어나면서 바빠진 주교의 대리인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지금도 교인의 자격을 주는 세례(洗禮)성사는 사제들이 지낼 수 있지만, 더 독실한 차원에서 '하느님의 군대가 된다'는 의미의 견진(堅振)성사는 주교만이 지낼 수 있다. 천주교만큼 위계(位階·Hierarchy)가 엄격한 곳도 드물다. 유일신의 뜻을 좇아 정해진 계급이기에 2천년을 지켜왔다.

자생과 순교의 전통을 자랑하는 한국 천주교는 보수적이며, 주교의 권위 역시 엄중한 편이다. 한국 천주교회엔 모두 21명의 주교가 15개의 교구를 다스리고 있다. 그 중에서 경남지역을 책임지는 마산교구장 안명옥(58·프란치스코)주교는 윤리신학 전공 교수 출신. 한국 천주교의 신앙교리위원회·생명윤리연구회 위원장을 맡아 '인간복제반대''사형폐지'운동에 헌신해왔다. 그가 지난 2일 '미군 장갑차 희생자 추모 및 불평등 SOFA 개정촉구 시국미사'의 주례를 맡았다. 주교가 직접 특정인을 추모하는 시국미사를 올리는 일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건이다.

주교는 "더이상 억울한 죽음이 이 땅에 일어나지 않게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기도했다. 평생 인간 생명의 지고함을 가르치고 실천해온 주교의 기도이기에 목소리는 낮아도 그 울림은 크리라.

오병상 대중문화팀장

obsang@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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