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許일병 의문사, 싸움만 할 건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군 복무 중 숨진 허원근 일병 사건에 대해 어제 국방부 특조단이 그의 사인을 '자살'로 결론내리고 조사 결과를 내놓자 지난 9월 이 사건을 '타살'로 발표했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한 사람의 죽음을 놓고 자살과 타살로 상반된 조사 결과가 나오니 헷갈리기도 하지만 두 국가기관이 서로를 비난하며 감정적으로 대립하는 모습을 보니 한심한 생각이 든다.

의문사위 조사는 許일병이 사고 당일 새벽 내무반에서 술취한 부사관의 총기 오발사고로 숨진 뒤 자살로 은폐됐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아직도 '타살'결론을 뒷받침하는 주장을 고수하며 특조단 조사의 문제점을 반박하고 있다. 의문사위는 '타살'을 증언한 부대원 2명에게 보상금까지 지급키로 결정해 놓은 상태다.

국방부 특조단의 '자살'결론은 이미 지난 10월 말 조사 중간발표 때부터 예견된 결과였다. 즉 부사관의 총기 오발은 없었고, 당일 오전 부대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다 오전 10시부터 11시 사이 폐유류고에서 세발의 총성이 울린 것이 청취됐다는 주장이다. 부대원들의 증언이나 법의학적 소견, 許일병의 성격 등 자살 정황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특조단은 의문사위 조사관들이 증인들의 진술을 날조하거나 허위 진술을 강요했고 현장검증을 조작했다고 정면으로 비난했다.

이들 두 기관 가운데 한 곳의 발표는 분명 진실이 아니다. 진실을 밝히기보다 서로 상대방 조사를 흠집내는 데에만 주력한다는 인상까지 주고 있다. 이래서야 국민이 어떻게 국가기관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18년간 한으로 남은 죽음의 진실을 그대로 묻어둘 수는 없다. 이제 활동이 재개될 예정인 의문사위는 특조단의 조사로 나온 일부 새로운 증거에 대해 재조사에 나서야 한다. 또 사건 당사자로 지목된 부사관이 의문사위 관계자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 상태이므로 사법부가 진실 규명에 나서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