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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전쟁’을 막기 위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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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아침 : 요강 씻기→밥 짓고→설거지→ 약 먹기, 저녁 : 국 끓이기→대문 닫기→일기 쓰기→가스 잠그기’.

이런 식으로 노인은 메모를 하고 하나하나 실천한다. 딸은 이런 아버지의 분투를 기록한 책(『할아버지의 부엌』)을 펴낸다. 독자들은 처음에는 노인에 대한 안쓰러움이 컸지만 점차 노인의 용기와 도전에 감동하면서 깨닫는다. 고령사회는 피할 수 없다. 잘 준비해 의연히 맞서야 한다. 그나마 사하이 게이초의 아버지는 은퇴를 대비해 저축을 꾸준히 했다.

이 장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상상이 된다. 대한민국은 지금 빠른 속도로 늙어간다. 예를 들자. 탤런트 차인표, 영화배우 송강호, 개그맨 김용만의 공통점은. 모두 67년생으로 43세다. 이 나이, 결코 많은 축이 아니다. 이들이 태어난 해에 한국의 중간연령은 18세였다. 18세 이상과 18세 미만 인구가 거의 같았다는 얘기다. 중간 연령은 2005년에 35.7세가 됐다. 그래서 43세 연예인들은 드라마나 쇼 프로그램에서 아직도 대부분 청년으로 그려진다.

인구학자들은 올해를 ‘은퇴 쇼크 원년’으로 부른다. 55~63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 712만 명이 정년을 맞아 본격적인 은퇴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총인구의 15%가량이다.

문제는 은퇴 후다. 이들은 앞으로 25년 이상 더 살 것으로 예상되지만 우울하다. 삼성생명이 이들을 대상으로 현재 마련한 노후자금을 조사했다. 이를 월수입으로 계산한 결과 은퇴 후 월평균 150만원의 소득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들이 가난해지면 그 부담은 자녀가 짊어진다. 부모 세대의 복지비용은 자녀의 주머니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현 추세라면 2000년 이후 출생자는 평생 1억2000만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지금 50세인 사람들의 평균 부담액 2200만원보다 6배 가까이 많다. 세대 전쟁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전쟁을 막으려면 노인들이 더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게 해답이다. 영국은 2006년부터 50세 이상 근로자의 직업훈련과 임금보조금제도를 연계한 ‘뉴딜50플러스’를 시행 중이다. 일본은 ‘고령자 고용안정법’에 따라 기업이 65세까지 정년을 연장하거나 정년퇴직 후 재고용 등을 선택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청년실업이 더 심각한데 한가한 소리냐”고 하지만 청년과 노인 일자리는 함께 만들어야 한다. 정년을 늘리고 임금을 조정해 일자리를 나누는 사회적 대타협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노년에 부엌을 챙길 수 있는 것만도 행복한 삶이다. 이런 노인을 위한 나라가 있어야 한다.

김종윤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