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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미래, 다큐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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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면

'다큐멘터리의 여전사'. 최근 한 평론가는 '밀애'의 변영주 감독을 이같이 불렀다. '밀애'는 전경린의 소설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이 원작으로 결혼한 남녀의 성적인 일탈을 그렸다. 그런 영화의 감독에게 웬 전사(戰士)? 감독의 이력 때문이다. 변감독은 종군 위안부에 관한 3부작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 등으로 유명하다. 그러니 '밀애'를 만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웬 애정물?"이라며 뜬금없어 한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난 영화 만드는 일이 즐겁고 하나의 유희일 뿐"이라며,영화를 무기삼아 사회운동을 하는 투사(鬪士)로 보는 시선을 거부했다.

변감독의 말마따나 아직도 다큐멘터리를 운동의 관점에서 보는 이들이 많다. '여전사'라는 말에도 그 같은 무의식이 담겨 있다. 그것은 한국의 다큐멘터리가 1980년대 군사정권 아래서 민중운동의 한 방편으로 본격 성장한 사실과 관계가 깊다. 그래서 다큐멘터리는 사회·정치적인 문제를 폭로하고 메시지가 강해야 한다는 관념이 굳어졌다. 관객은 관객대로 다큐멘터리는 따분하고 지루하고 훈계조라는 인상을 은연 중 굳혔다.

최근 서울의 한 소극장은 가수 한대수를 조명한 다큐멘터리와 애완견을 기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풍으로 담은 '뽀삐'를 상영했다. 한국 다큐멘터리가 일반 극장에서 상영된 건 '낮은 목소리' 시리즈 이후 처음으로 기억한다. 비록 상영 기간은 짧았지만 다큐멘터리가 일반 극장을 탈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했다는 면에서 의미있는 사건이었다. 더구나 '낮은 목소리'같은 계몽성 짙은 작품이 아니라 소재나 제재가 보다 유연해졌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었다.

외국에 비할 때 한국 극장의 다큐멘터리 홀대는 심각하다. 한국 다큐멘터리 뿐 아니라 외국 작품에 대해서도 아주 인색하다. 빔 벤더스 감독의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나 이란 작품'ABC아프리카''칸다하르' 등이 공개된 게 고작이다.

한국영화가 혁신하려면 다큐멘터리를 제대로 수용해야 한다. 영화사(史)를 훑어봐도 새로운 물줄기는 항상 다큐멘터리를 수원(水源)으로 삼았다. 1940년대 이탈리아 영화는 비전문배우를 기용하고 스튜디오 바깥으로 카메라를 들고 나감으로써 '네오 리얼리즘'을 창안했다. 1960년대 프랑스 누벨바그를 선도한 '네 멋대로 해라'에서 고다르는 즉흥적인 대사와 다큐멘터리적인 시선으로 파리 시내를 잡아냈다. 90년대 이후 아시아 영화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나 모센 마흐말바프는 다큐멘터리 감독 출신일 뿐더러 지금도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다. 오는 22일 개봉하는 키아로스타미의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는 그가 다큐멘터리로 단련되지 않았다면 결코 나올 수 없었을 걸작이다.

한국에서는 홍상수 감독이 독보적으로, 다큐멘터리적인 요소가 극영화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자각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한국영화에 새로운 비전을 보였다면 '일상의 발견자'라는 모호한 이유로서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사고하고 그 경계를 가로지르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 있다.'강원도의 힘''생활의 발견' 등에서 그는 픽션이라고도, 다큐멘터리라고도 할 수 없는 자기만의 아우라를 창출했고 그 '열린 텍스트'가 그의 영화를 빛나게 한다.

물론 홍감독 외에도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와 곡절 끝에 다음달 개봉하는 '죽어도 좋아'에도 다큐적인 요소가 짙게 녹아 있다. 특히 '죽어도 좋아'의 박진표 감독은 30여편의 다큐를 제작한 TV PD 출신이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홍감독 만큼의 자의식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누군가 한국영화의 미래를 묻는다면, '눈을 들어 한국의 다큐멘터리를 보라'고 답해야 하리라.

ley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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