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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속에 저 바람 속에'40년 만에 개·증보판 낸 이어령 씨] "이젠 우리 만의 문명 만들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흙에 묻은 마음조차도 간직할 수 없이 된 어려운 세상이다. 일어서든지 부서지든지 무엇인지를 하나 선택해야 될 때가 온 것이다. 뜨뜻미지근한, 그리고 엉거주춤하게 살아온 이 민족의 마음에 불을 지를 때가 온 것이다. '바보'온달이 아리따운 공주를 맞이하고 치욕의 생활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그 내일을 위해 우리들의 서낭당 기도는 눈물을 거두어야 한다. 4천년이나 늙은 이 은사(隱士)가 자기의 상처를 직시하고 다시 젊어지는 날, 오욕의 역사를 향해 분노하는 날, 새로운 한국은 탄생할 것이다."

40년 전 우리는 그랬다. 6·25의 상흔이 채 아물기 전 우리는 바다 건너온 밀가루로 수제비를 떠 먹으며 오늘에 이르렀다. 당시 시골 동네 아이들이 내뿜는 매연 냄새를 맞기 위해 미군 지프 꽁무니를 따라 뛰었듯 우리는 헐레벌떡 뛰어왔다.

40년 전 다혈질의 한 청년이 엉거주춤 살아온 이 민족의 마음에 불을 질러 새로운 한국을 탄생시키기 위해 위와 같이 붓을 들었다.

한국의 마음을 곧이곧대로 비판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다. 신문에 연재되며 화제를 부른 이 글은 책으로 묶이자마자 30만부가 팔렸고 지금까지 2백50만부나 나가 에세이로서는 보기 드물게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이어령(68·중앙일보 고문)씨가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문학사상사) 발간 40주년에 개정증보판을 새로 내놓았다. 원문은 가급적 그대로 살린 대신 그동안 달라진 우리 민족에 대한 저자의 시각을 소개하기 위해 장문의 문답식 'Q&A'를 덧붙였다. 이와 함께 이씨는 문학사상사에서 자신의 전집인 '이어령 라이브러리'30여권을 순차적으로 펴낼 예정이다.

천재·석학, 문학평론가·소설가·극작가·에세이스트, 국문학자·교수·언론인·출판인·일본문화 연구가·문화부 장관, 그리고 88올림픽 기획자 등등. 이씨를 수식하는 말은 다양하다. 그리고 그 수식된 분야에서는 항상 전위를 맡으며 온몸을 던지는 정력가다.

그래 이 전방위의 문화인에게 도대체 무엇으로 불렸으면 가장 좋겠는가 물었다.

"나는 언어의 마술사도, 단군 이래 순발력이 가장 뛰어난 사람도 아닙니다. 천재라는 말은 모독으로도 들리고요. 단 저는 지적 호기심에 끝없이 목 마르고 허기진 사람입니다. 거기서 비롯된 창조적 상상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 창조적 상상력으로 좀더 나은 사회를 위해 계속 봉사하고 싶습니다. 그저 청산유수의 달변가니 아이디어 맨이니 하고 불릴 때가 가장 곤혹스럽습니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일간지 연재물이었다. 당초 신문사에서 제시한 제목은 '한국 문화의 풍토'였다. 그 때는 그런 제목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이씨는 그때 '풍'을 '바람', '토'를 '흙'이라는 순 우리말로 바꿨다. 그리고 멋을 부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라는, 당시로서는 전혀 새로운 제목을 달았다.

이런 새로운 제목의 감각으로 그간 '은근과 끈기'정도로만 상식화돼 있던 한국 문화의 속내를 바라본 것이다. 그때 달리던 지프 차창에서, 이방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이씨의 한국의 문화에 대한 시각도 지금은 많이 바뀌었음을 이번 개정 증보판 후반부에서 상세히 밝혀 놓았다.

"40년 전만 해도 우리는 분명 농경사회였습니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가 농경문명에서 벗어나 근대 산업문명으로 나가기 위해 빈들에서 외치는 한 젊은이의 절규였다면 지금은 산업문명의 도시 한 복판에서 디지털의 신기술을 항해하려는 새로운 모험의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향하는 그 때 나에게 필요했던 것이 지프의 시점이었다면 산업사회에서 지식 정보사회로 향하는 이 시대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정자(亭子)의 시점입니다. 나는 요즘 정자 위에 올라앉아 한국을, 그리고 21세기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지프의 시점이 달리며 앞만 바라본 일방적 시각이었다면 정자 시점은 사방이 툭 트여 개방된 시점이다. 또 정자는 온갖 살림살이가 가득찬 소유의 공간이 아니라 주인없이 텅텅 비어 모두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빈 공간이다.

또 평지 마을에서는 서로 대립되거나 어긋나 있는 것들도 내려다 보며 두루 포괄하고 통합할 수 있는 높이를 지닌 공간이다. 나도 보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나도 보이는 쌍방향의 시점교환을 가능케 하는 이 정자 공간이야말로 일방 통행적인 시점과 달리 상대적인 관계에 의해 네트워크된 정보사회에 맞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1930년대 시골에서 태어나 식민지 시대의 가난한 농촌과 전쟁, 극심한 도시의 결핍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대학 시절 좌우 이데올로기로 서로 죽이는 환경 속에서 살았습니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를 쓰던 60년대에 들어와서는 남들이 2백년 걸려도 하지 못한 산업문명의 모든 것을 불과 20년 안에 다 치렀습니다. 한국의 운명과 내 운명은 똑 같은 것이었지요. 그러나 이제 부터가 중요합니다. 과거의 선진국 베끼기나 정권이나 주류에 대한 무조건적인 저항은 더이상 안됩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비록 힘들지라도 창의성을 갖고 독자적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이씨는 이제 선진국들을 둘러보며 베낄 것이 아니라 지식정보사회의 새로운 문명의 유랑자로서 새 패러다임을 우리가 만들어가자고 제안한다.

늘 그랬던 것처럼 이씨는 오늘도 샘솟듯 솟구치는 21세기 새로운 문명의 패러다임에 대한 창의성 때문에 바쁘다. 해 다 저물어 밥 먹으러 오라 부르는 엄마의 소리도 듣지 못한 채 노는 개구장이마냥 솟아오르는 생각들을 좀더 나은 삶, 문화를 위해 이리저리 짜맞추느라 오늘도 분주하다.

이경철 문화전문기자

bacch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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