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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업과 영 딴판이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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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집중화보다는 다각화, 분사보다는 통합을 서둘러라.' 미국 초우량기업들의 최근 경영 패턴이다. 외환위기 이후 슬림화와 핵심 역량으로의 집중에 몰두해 있는 국내 기업과는 정반대다. 대한상공회의소(www.korcham.net)는 지난 7일부터 열흘 동안 국내 기업 관계자 40여명과 함께 미국의 보잉·휼렛패커드 등 6개 초우량기업을 둘러본 후 내놓은 분석 결과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분석 결과를 보면 우선 사업다각화 현상이 뚜렷하다. 보잉사는 1990년 80%에 달하던 민간 항공기 매출 비율을 지난해 60%까지 낮췄고 올해는 다시 10%포인트를 줄인다는 전략이다.

대신 경기에 크게 영향 받지 않는 방위산업을 강화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항공종합서비스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이미 인터넷이 가능한 비행기에서의 여행서비스 중개업을 시작했고 항공운항통제시스템 사업도 진행 중이다.

보잉사의 랜돌프 바셀러 마케팅 담당 부사장은 "최근 경기 침체를 겪으면서 경영진이 다양한 업종의 사업 영역을 가져야 경기 변동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며 "이제 보잉을 '항공기 메이커'가 아닌 '항공종합서비스사'로 불러달라"고 주문했다.

라스베이거스의 대표적 호텔인 MGM 미라지는 카지노 호텔이 아닌 종합가족위락 중심 센터로의 변신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최근 3년여 동안 호텔 주변에 쇼핑센터와 사자동물원, 쇼비즈니스센터, 골프장 등을 개설하고 가족단위 고객 유치를 경영의 최우선 목표로 설정했다.

민형진 한국마케팅 담당은 "카지노가 갖는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고 다양한 수입원을 확보하기 위해 가족위락 영역으로 사업을 다각화한다는 게 라스베이거스 지역 호텔들의 공통적인 경영화두"라고 설명했다.

조직을 통합해야 경비가 절감되고 효율성이 제고된다는 생각도 분사에 익숙한 국내기업과는 다른 점이다.

보잉은 맥도널 더글라스를, 휼렛패커드는 컴팩을 인수·합병해 20% 이상의 경비절감 효과를 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오라클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40개로 분리해서 운영하던 세계 각국의 영업망 관리 서버를 최근 2개로 통합했다. 이 가운데 하나는 백업 서버이기 때문에 사실상 하나로 통합해 효율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편하고 재미있게 꾸민 근무환경(Fun Culture)이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준다는 생각도 일반화됐다.

커피전문점인 스타벅스의 시애틀 본사는 백화점을 방불케 할 정도로 직원들을 위한 배려가 돋보인다. 건물 내 곳곳에 각종 놀이기구나 편의시설이 있는 것은 기본이고 디자인 전시실과 응급치료시설까지 구비돼 있다.

상품이 아닌 무형의 자산을 판다는 광고 전략도 미국 주요 기업들의 주된 추세다. 스타벅스는 고객들에게 고급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심기 위해 사업자와 지점 개설 지역까지 신경쓴다.

예컨대 이미지가 좋지 않은 회사나 사업자와는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계약을 하지 않고, 일단 점포를 개설하기로 했으면 해당 지역 중 가장 위치가 좋은 곳만 고집한다.

MGM은 카지노·도박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카지노 관련 분야에서의 제휴나 사업 확장은 자제하고 있다. 대신 가족중심의 위락사업에서만 파트너를 찾는다.

카지노 사업이 당장 돈은 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부정적 브랜드 이미지를 쌓아 손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주대 조영호 교수(경영학과)는 "국내 기업은 변화에 적응하려는 경영목표는 있으나 실천이 미약한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고 "이번에 방문했던 6개 기업은 핵심 역량의 부가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끝임없이 변화를 추구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최형규 기자

chkcy@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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