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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역사 대학가요제 따지지 말고 즐겨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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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면

스물여섯 해째 대학가요제가 지난 주 토요일 열렸다. 인터넷 게시판에 들어가 보니 프로그램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즐기게 해줘서 고맙다'는 의견과 함께 '이젠 문을 닫아야 할 때'라는 의견도 눈에 띈다. '왜 그 노래가 상을 받았는지 모르겠다'는 의혹의 시선 밑에는 '그건 당신의 취향일 뿐'이라는 점잖은 충고도 있다.

대학가요제의 변치 않는 세 요소는 대학·가요·축제다. 그렇다면 첫째, 대학의 기백이 살아 있어야 한다. 대학문화는 대항 문화다. 세상이 비틀거리거나 안일에 젖어 있을 때 벌처럼 날아가 독침을 쏘아야 한다. 둘째, 가요는 가곡이 아니다. 목과 배에 힘주기보다는 마음과 귀를 즐겁게 해 대중적 삶의 무게를 덜어주어야 한다. 셋째, 너무 경쟁적이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축제다. 영어 제목도 '캠퍼스 송 페스티벌'이지 '콘테스트'가 아니다.

현장은 주변부터 떠들썩했다. 지하철 7호선 숭실대역부터 행사가 열린 운동장까지 온통 젊은이의 물결이었다. 응원단이냐고 물었더니 윤도현 보러 왔단다. 그 대답에 가식이나 꾸밈이 없다. 스타를 기다리는 동안 그들은 아마추어들의 무대를 지켜볼 것이다. 그 풋풋함에 매료돼 스스로 젊음을 확인한다면 더 좋은 일이다.

시상식 직전에 등장한 들국화의 전인권은 윤도현 밴드와 함께 '돌고 돌고 돌고'를 불렀다. 그야말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준 무대였다. 대학가요제 출신으로 심사를 맡은 배철수는 '가슴이 뛴다. 대학가요제는 젊은이의 축제로 영원해야 한다'는 요지의 말을 해서 큰 박수를 받았다.

시청률을 보니 1, 2부 평균이 10% 정도다. 보는 사람이 적으니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한 마디 해 주고 싶다. TV가 일년 3백65일 중 하루, 그 하루 중에서도 3시간을 음악을 사랑하는 젊은이에게 할애하는 게 부당한가. 아마추어의 노래, 그것도 처음 들어보는 노래에 귀를 기울이는 시청자는 적다. 그렇다면 옛날엔 왜 그렇게 사람들이 좋아했느냐고 물을 것이다. 옛날엔 왜 그렇게 고교 야구가 인기 있었나 생각해 보라. 고교 야구가 인기 없다고 고교 야구를 없앨 수는 없다. 대학가요제는 TV가 만들었고, 26년을 공들여 지켜온 문화재다. 없애면 후회할 것이다.

대학가요제에는 가수를 꿈꾸는 학생들만 나오는 게 아니다. 가수 등용문도 좋지만 축제 한마당도 좋다. 대학시절의 멋진 추억 하나 만들어 보려고 나오는 젊은이들도 많다. 그러니 왜 거기서 히트곡이 안 나오느냐고 따질 일이 아니다.

1990년대 들어 대학가요제는 기획사에서 작정하고 키우는 예비 가수들의 출연을 원천봉쇄하기도 했다.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래서 대학가요제에서 줄줄이 가수를 배출하던 시절에는 가수 되려고 대학 간다는 말이 낯설게 들리지 않았다.

시대는 달라졌다. 끝까지 노래 부르고 싶은 젊은이들은 고단한 길을 돌아 결국 대중과 만난다. 지금 막 뜨고 있는 불독 맨션의 이한철은 94년도 대상 수상자다.

92년도에 입상한 김경호도 대학가요제에 나온 지 한참 지나서야 떴다. 93년도에 출연한 배기성(캔)이 대중에게 다가간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평가하려고 하지 말고 감상만 하지도 말고 빠져들어라. 바다 앞에서 바다의 온도, 오염도를 분석하다가는 결코 바다를 사랑하지 못한다. 바라만 보고 파도 소리만 듣다가는 바다의 친구가 되지 못한다.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젊음의 바다에 첨벙 뛰어들어라. 젊음과 하나가 되고 싶다면서 뭐 그리 이것저것 따지려 드는가.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chjoo@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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