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선(茗禪)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성북동 골짜기에 가을이 깊었다. 그 만추(晩秋)에 맞춰 간송미술관이 '추사(秋史)명품전'을 열고 있다. 보물창고를 좀처럼 열지 않는 미술관이 추사 김정희(金正喜)의 진품·명품을 공개한다니 서둘러 달려갔다. '명선(茗禪)'이란 작품의 오리지널을 보리라 기대하며.

쟁쟁한 명품 가운데서도 '명선'을 찾는 것은, 글을 주고 받은 문화애호가의 따스한 정(情) 때문이다. 추사의 정을 받은 사람은 승려 초의(草衣). 초의선사는 차(茶)의 달인으로 유명해 그가 머물렀던 일지암(一枝庵·전남 해남)은 지금도 차인(茶人) 사이에서 성지(聖地)로 여겨질 정도다.

동갑내기였던 두 사람은 30대에 이름을 떨쳤을 정도로 유명했던 당대의 지식인. 일찌감치 서로를 알아보고 학문을 논하던 사이였다. 그러던 중 추사가 55세 되던 해 갑자기 당쟁으로 귀양을 떠나게 됐다. 귀양살이 중에서도 가장 험한 땅(제주도 대정)에 가장 엄중한 형식인 위리안치(圍籬安置·집 주위에 가시울타리를 둘러 가둠)를 당하게 됐다. 그 어렵고 외로운 때 추사에게 정성 들여 만든 차를 선물한 사람이 초의선사며, 추사가 그 고마움에 답하여 전한 글이 '명선'이다.

그 뜻이 우정만큼 깊고 은근하다. '명(茗)'은 잎이 다 자라고 나서 딴 거친 차. 거친 잎이라도 달인의 손길로 다뤘으니 그 품격은 상당했을 것이다. 추사는 그 차를 선(禪)에 비유했다. 선불교에선 차를 중시해 '다선일여(茶禪一如·차와 선은 같다)'라고 흔히들 말한다. 그런데 추사는 한 발 더 나아가 거친 차 '명'을 '선'의 경지에 비유한 것이다. 불립문자(不立文字)의 깨달음을 할(喝·고함)과 방(棒·몽둥이질)으로 대신하는 선불교의 파격에 어울리는 표현이다.

글씨는 곧 그 사람의 마음이라 필획도 예사롭지 않다. 2세기 중국 후한(後漢)시대 만들어진 백석신군비(白石神君碑)라는 비석의 글씨에서 따온 예서(隸書). 상형문자인 한자의 회화성을 맘껏 살려 유배지 제주도의 현무암처럼 기괴할 정도로 힘차다.

물론 '명선'은 추사가 남긴 예술혼의 일부에 불과하다. 낡은 미술관 1·2층을 가득 메운 80여 명품을 한자씩 뜯어가며 음미하자면 가을 해가 짧다. 인고의 세월을 예술로 승화시킨 추사, 그의 명품을 오늘에 남긴 간송(澗松·미술관설립자인 전형필 선생의 호), 그리고 노란 은행잎으로 뒤덮인 미술관의 가을이 어울려 고고한 문자향(文字香)을 내뿜는다. 도심 속에 살아 있는 문화의 숨결처럼.

오병상 대중문화팀장

obsa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