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회계검사 기능 장기적으로 국회 넘겨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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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예산은 대통령의 리더십을 뒷받침하는 핵심적인 통치 수단이다. 특히 예산은 대통령의 비전을 구체화한 것이어서 국정 기획과 밀접하게 연계돼야 한다.

그러나 현재 기획예산처에는 이름과 달리 국정 기획 기능이 없다. 또 입구에서 돈이 얼마가 들어가는지는 알아도 출구에서 무엇을 얼마나 얻는지는 알기 어려운 구조다.

그러다 보니 쓰임새와 성과를 고려(선 기획-후 예산)하는 것이 아니라 예산부터 확보하고 나중에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 궁리(선 예산-후 기획)하는 관행이 지속되는 것이다.

예산과 기획을 연계하는 대안들은 다양하게 제시돼 있다. 그 가운데 캐나다와 호주처럼 거시적인 예산 전략은 대통령 정책기획실이, 미시적인 예산 편성은 재경부가 나누어 맡는 방안이 가장 무난하다.

프랑스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처럼 재정경제부가 재정 기능을 전담하면 '양입제출(量入制出)'이 이뤄져 재정을 건실하게 운용할 수는 있지만 국정 기획과 예산의 연계는 미흡해진다.

그렇다고 기획예산처에 국정 기획 기능까지 부여하면 미국 관리예산실(OMB)처럼 기획예산처가 '움직이는 정부'로 변모할 수 있다.

더구나 겉으로는 국무총리, 실제로는 대통령의 지휘를 받는 괴리를 해소해야 하는 문제가 남게 된다.

정책기획실에 예산 기능까지 주는 또 다른 대안은 위헌 소지가 있고, 무엇보다 대통령의 권한을 너무 강화해 '제왕적 대통령제'로 돌아갈 우려가 있다.

예산 기능 이원화가 성공하느냐는 정책기획실과 재경부의 역할 분담에 달려 있다. 정책기획실이 주도하면 분권화에 역행하고, 재경부가 주도하면 국정 기획과 예산이 따로 놀 수 있다. 역할이 겹치는 부분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감안해 재경부의 손을 들어주는 편이 더 안전하다.

재경부가 미시 예산 편성 기능을 흡수하면 권한이 비대해지고 장관에게 과부하가 걸릴 수 있다. 이를 불식하기 위해서는 예산 과정을 분권화해야 한다.

우선 투입ㆍ과정의 사전ㆍ근접 통제를 영연방 국가들처럼 산출ㆍ성과의 사후ㆍ원격 평가로 전환해야 한다. 객관적인 성과에 입각해 예산을 편성ㆍ집행ㆍ심의하면 '나눠 먹기'와 '제몫 찾기' 등 폐해를 줄일 수 있다.

총액 인건비 제도 등을 통해 행정 각부의 자율과 재량도 확대해야 한다.

또한 미국 의회예산실(CBO)과 같은 정책ㆍ예산 분석 전담 기구를 국회에 설치해 예ㆍ결산 심의 기능을 보강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감사원의 회계 검사 기능을 국회로 이양해 행정부의 독주를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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