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에 스민 먹물, 평생 마르지 않게 하겠다는 여든둘의 이 어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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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국서예의 맥을 이어온 우죽 양진니의 ‘인의예지’, 64X68㎝. [우죽서실 제공]

우죽(友竹) 양진니(82)씨는 평생 손톱 속에 스며든 먹물이 마르지 않도록 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글씨를 써왔다. 여섯 살 때부터 서예를 배웠으니 70년 넘게 붓을 잡아온 한국 서단의 웃어른이다. 소전 손재형(1903~81) 선생에게 배우고 운여 김광업(1906~76)으로부터 지도 받은 우죽은 1974년 국전(國展)에서 대통령상을 받으면서 한국 서예계의 대표 작가로 자리 잡았다.

우죽이 10~23일 서울 인사동 서울미술관에서 여는 개인전은 그의 열정과 전시 규모로 서단의 화제가 되고 있다. 2006년 ‘한국서예 3대가전’에 초대받은 지 4년 만에 다시 대형 전시실을 가득 채우는 회고전 성격의 작품전을 마련했기 때문. 전지 29장에 쓴 노자의 『도덕경』전문을 비롯해 대필(大筆)과 한글서예까지 후학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서예의 모든 것을 망라했다. 우죽은 “글씨 공부는 죽을 때까지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특히 좋은 옛 글씨본을 꾸준히 보고 쓰는 임서(臨書)가 곧 창작이자 서도(書道)임을 깨우쳐주려고 의도했다고 밝혔다.

우죽은 한국서예협회 이사장으로 일할 때 국회에 청원서를 내어 대학에 서예학과를 신설하게 만든 산파 구실을 했다. 최근 복원사업으로 거듭난 경복궁의 경성전·태원전·청휘문·필성전의 현판 글씨가 그의 솜씨다. 그는 “10여 년 뒤 ‘백수전(白壽展)’을 여는 게 꿈”이라고 했다. 02-732-3325.  

정재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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