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포럼

북한에 경제 자문역을 보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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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근 일본 TV들이 입수.방영한 북한의 실상을 보며 그 처참함에 가슴이 미어졌다. 여기저기 땅바닥에 눕거나 기어다니는 어린아이들, 맨발에 너덜거리는 옷과 땟국이 흐르는 얼굴, 연방 머리와 몸을 긁적거리는 소녀. 저 아이는 도대체 언제 세수를 했을까?

절절한 안타까움과 함께 어떻게 저런 장면들이 생생하게 찍혀 외부로 전달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특히 탈북을 시도하다 붙잡힌 사람들의 수용소 내부 징벌 장면까지 비디오에 담을 수 있었다니 뭔가 이상하다. 철통 같다는 통제사회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는 방증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최근 외신들이 줄기차게 쏟아내는 북한 붕괴론이 심상치 않게 여겨진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 말 미주.유럽 순방 때 북한의 붕괴를 원치 않으며 북한은 쉽게 붕괴되지도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 발언이 마치 신호탄이라도 되는 듯 미국을 비롯해 영국.일본.독일.홍콩의 유력 신문과 TV들은 번갈아 가며 그 반대의 설과 가정, 주장을 끊임없이 내놓고 있다. '북한 붕괴론의 소용돌이''김정일 정권 붕괴 임박설''북한 주민들의 민중봉기 가능성'등 제목부터가 자극적이다.

지난 8일자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엔 호주의 한국문제 연구원 안드레이 랭코브의 재미있는(?) 제안이 실렸다. 국제사회가 '김정일과 그의 사람들'에 대한 사면을 약속해 주자는 내용이다. 북한의 지도층은 자신들의 안위 때문에 죽기 아니면 죽이기의 각오로 현 체제 고수에 매달리고 있는 만큼 사면을 약속해 스스로 개혁에 나서도록 유도하자는 것이다.

6일자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엔 "중국이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을 침공하고, 중국이 지원하는 과도기 정부를 평양에 설립해야 한다"는 칼럼이 실렸다. 글쓴이는 미국의 중국 전문가라는 브루스 길리. 지난해 말 미국의 초강경파로 알려진 호로위츠가 "중국이 북한의 한 장군을 골라 정권을 탈취케 한 뒤 그로 하여금 중국군 20만명을 북에 보내도록 요청케 하여 북한을 속령으로 만드는 시나리오를 검토 중"이라고 한 발언보다도 더 과격하고 우리의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우리 정부는 그 같은 예측들이 근거가 부족하거나 확대해석됐다고 보고 있다. 북한 군부와 주민들에 대한 김정일 정권의 장악력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그 진단이 정확하리라고 믿으면서도, 너무 안이한 정세판단은 아닌지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동독이 언제 예고하고 무너졌던가. 북한의 붕괴는 곧 남한의 재앙이다. 그중에서도 최악의 시나리오는 붕괴과정에 무력충돌이 발생하는 사태다. 붕괴된 북한에 중국 등 제3 세력이 진출하는 경우도 악몽이다.

결국 우리로선 북한을 연착륙시켜 점진적이고도 평화적인 통일을 이끄는 게 최선의 방책일 수밖에 없다. 그 성공 여부는 북한의 경제회생에 달렸다. 그러나 지금 같은 단순 지원이나 일부 지역 경협차원만으론 근본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선만 줄 게 아니라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북한 경제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큰 틀의 접근이 있어야 한다는 견해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보다 화끈한 햇볕정책이요 지원책이다. 이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접목시키기 위해서도 요긴하다고 본다.

우리 정부가 총리급의 비중 있는 경제계 인사를 개성공단 관리자로 임명하고, 그가 개성은 물론 북한 경제 전반을 설계하고 코치하는 북한 경제 특별자문역을 맡도록 하면 어떨까. 문제는 북한이 수용하느냐 여부인데, 북한도 박정희식 경제개발 모델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신의주 특구 책임자로 박태준씨를 검토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북한이 받아들인다면 남북 상호 윈윈 게임이 될 수 있다.

허남진 논설위원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