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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리아 에보라 '앤솔로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0면

문화가 훌륭한 외교사절이란 사실을 세자리아 에보라만큼 분명히 입증한 뮤지션도 드물다. 1941년 생인 그는 아프리카 서부의 세네갈에서도 약 6백20km나 떨어져 있는 섬나라 카부 베르드(영어로는 케이프 베르데) 출신이다. 중부 대서양에 자리한 인구 40만 명의 이 작은 나라는 1460년 포르투갈인들에게 발견된 이후 1975년 독립할 때까지 포르투갈의 기나긴 지배를 받아야 했다. 이 작은 나라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된 건 '지구촌의 디바' 에보라와, 그가 선보인 전통음악 '모르나(Morna)' 때문이다.

포르투갈어로 '미지근한''열정 없는'이란 뜻을 지닌 모르나는 단조풍의 슬픈 멜로디와 빠르지 않게 찰랑거리는 리듬을 담고 있다. 아프리카 본토의 강렬하면서도 원초적인 리듬보다는, 감미롭고 친근한 멜로디 위주의 음악이라 우리네 입맛과도 잘 어울린다.

하지만 성공하기까지 겪어야만 했던 에보라의 가혹한 시련은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다.

나라에서 손꼽히는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의 행복은 10대 초반 아버지를 여의며 끝이 났다. 12세 때의 첫 결혼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세 번의 결혼을 했지만 모두 남자들로부터 버림받았다. 이런 일들은 그에게 "사는 동안 다시는 한 지붕 안에 남자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게 만들었다.

폭음과 줄담배 속에서 노래도 점점 멀어지고 삶의 의미조차 약해질 무렵 그에게 생애 최초의 행운이 찾아왔다. 에보라의 음악적 가치를 한눈에 알아본 프로듀서 주제 다 실바가 그를 프랑스로 인도했고, 이렇게 시작된 프랑스에서의 활동은 전 세계적으로 4백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 그래미상의 단골 후보 등 성공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새 앨범 '앤솔로지(Anthology)'(BMG코리아)는 2000년도에 발표했던 '더 베스트 오브'에 이은 두 번째 히트곡 모음집이다. 모르나의 명곡 '프티 페이(작은 나라)'를 비롯해 '소다드(그리움)''앙골라''카르나발 드 상 비센트(상 비센트의 축제)' 등이 담겼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베사메 무초(키스 미 머치)'와 '마리아 엘레나'가 빠졌지만 에보라가 전하는 넉넉한 연륜의 노래를 만끽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앨범 발매와 함께 전해진 오는 23일(세종대 대양홀, 02-2166-2700)의 내한공연 소식도 마음을 설레게 한다. 아직 월드뮤직이 활성화되지 않은 한국에서 에보라의 내한공연은 분명 하나의 사건이다. 시간의 모진 시험을 견뎌 낸 그의 노래는 그리 어렵지 않게 우리 마음에 다가설 것으로 생각된다. 음악에 국경이 있을 수 없고, 언어가 감동의 장벽이 될 수 없다는 진리를 입증할 무대가 될 것으로 믿는다.

<대중음악평론가·mbc fm '송기철의 월드뮤직'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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