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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받을 건 쥐어짜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전남 화순군 김귀례(72·여)씨는 유일한 재산인 10평 남짓한 집을 날릴 처지에 있다. 건강보험공단이 건강보험료(31만여원·월 보험료 3천원) 체납액을 내라면서 지난 7월 말에 집을 압류했기 때문이다. 金씨에겐 아들(50)이 있지만 두 차례 교통사고를 당한 지체 장애인이라 부양능력이 거의 없다고 한다. 金씨는 "소득이 없어 당장 먹고 사는 게 걱정인데 보험료를 어떻게 내느냐"고 한숨지었다.

건보공단이 보험료 체납자들의 개인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재산 등을 마구잡이로 압류해 반발을 사고 있다. 공단 홈페이지(www.nhic.or.kr)와 전국 지사에는 "체납 때문에 건강보험을 이용하지도 못하는데 재산까지 압류하느냐"는 항의가 쇄도하고 있다.

넉달치 보험료 4만3천원을 체납했던 조모(44·여·경남 마산시)씨는 지난 7월 장사하는데 사용하는 1t 트럭이 압류됐다. 관광버스를 운전하던 윤모(54·강원도 화천군)씨는 지난해 3월 체납된 보험료(19개월치 43만원) 때문에 임금 압류 통지서가 회사로 배달된 뒤 "회사 이미지가 나빠진다"는 이유로 해고당했다.

복학할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할인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대생의 월급(50만원)이 부모의 체납보험료 때문에 압류당한 경우도 있다.

2000년 7월 건보통합 전에는 건보료 체납자에 대해 독려만 했지 재산을 압류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지난해 초 건보재정이 파탄난 뒤 대량 압류가 시작됐다. 건보료가 체납되면 독촉장이 나가고 석달치를 체납하면 건보혜택이 중지된다. 보건복지부의 승인을 받아 두세 차례 예정통지서를 보낸 뒤 압류한다. 올들어 34만가구의 부동산·임금 등을 압류했으며 28만가구를 추가할 예정이다. 이는 지역건보 가입자의 7.3%에 해당된다. 올해 이중 76건을 이미 공매처분했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체납자의 사정이 딱한 경우가 있지만 규정상 체납자에 대해서는 압류하도록 돼 있고 성실히 보험료를 내는 사람과 형평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보건사회연구원 최병호 사회보장연구실장은 "체납자의 재산을 담보로 보험료를 대출해주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회보험노조 송상호 선전국장은 "체납액을 결손처리하는 조건(가령 노인을 둔 재산없는 가구 등)을 완화하고 납부능력이 없는 체납자는 능력이 생길 때까지 납부를 유예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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