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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명·기업로고 히트 제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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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8면

하이트 맥주·햇반·이자녹스 화장품· 파브 TV·휘센 에어컨·디오스 냉장고· 디스 담배-하나같이 귀에 익숙한 브랜드(상표) 이름들이다. 사람과 하늘·땅을 교묘하게 조합한 하나은행 로고, 색깔이 있는 자석 모양을 유니텔의 상징, 자연을 담은 큰 그릇을 뜻하는 풀무원 로고-한번 보고나면 금방 눈과 친해지는 조형물 같다. 이들 모두는 기업 이미지 통합(CI) 전문 업체인 인피니트에서 태어났다. 직원이라야 고작 25명. 그러나 CI 업계에서 인피니트를 모르면 간첩이다. 지금까지 히트 친 CI 로고와 브랜드 이름이 무려 1백여개에 달할 정도다.

88년 설립된 인피니트는 한국의 내로라 하는 고객들을 확보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물론 금융기관·교육기관을 포함해 국가정보원· 한국관광공사 등 국가기관과 언론사까지 단골이다.

이 회사 고재호(41)부사장은 "브랜드는 무형의 자산이고 돈입니다. 심지어 기업은 망해도 브랜드는 남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브랜드 경영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지요"라며 브랜드 관리(BM)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인피니트는 회사 설립 3년째인 91년부터 업계 정상 자리를 굳혀왔다. 비결은 철저한 시장조사와 고객 중심의 경영.

업체의 단순한 네이밍(브랜드 이름짓기)작업은 보통 5주가량이 걸린다. 네이밍 팀은 우선 2주동안 기업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시장조사와 고객반응을 점검한다. 기업 이미지에 가장 맞는 이름을 찾기 위한 기초 과정이다. 일단 해당 기업의 문제점과 시장반응, 그리고 이들을 종합한 이미지가 파악되면 이후 3주 동안 모든 발상을 통해 구체적인 후보명을 찾아낸다.

아무리 좋은 이름을 찾아도 마지막 단계에서 상표권이나 도메인 확보 문제로 탈락하는 경우도 많다. 그만틈 네이밍 과정은 난산의 연속이다. 특히 정보통신 분야나 화장품의 경우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최종 후보 수는 당초 제안된 안의 20% 미만이다. 이 회사에서 네이밍 팀을 이끌고 있는 문행천(35)실장은 "신부가 결혼식을 위해 웨딩드레스를 준비할 때처럼 고르고 재보고 하는 몇 번의 가봉과정을 거쳐야 쓸만한 브랜드 이름이 탄생한다"며 네이밍의 고충을 토로했다. 맥주 브랜드로 개발돼 나중에 회사명으로 채택된 하이트의 경우 막상 최종 단계에서 조선맥주 임직원들의 반발로 좌절될 뻔했던 위기가 있었다.

문실장은 "장기간에 걸친 타당성 검토와 대내외 조사를 하고 전략적 측면에서의 파급효과까지 완벽하게 준비했지만 고객사 경영진의 최종 허락은 수 차례의 수정을 거치고서야 떨어졌다"고 회고했다.

네이밍의 최종 단계에서 산고를 겪었던 또 다른 사례로 하나은행을 꼽을 수 있다. 10여 년 전 금융 단자회사에서 시중은행으로 변신을 모색하던 이 회사는 친근한 이미지로 시장 교두보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에 따라 최종적으로 '아카시아은행'과 '하나은행'중 하나를 회사 이름으로 결정키로 했다. 지금이야 친근한 이미지의 은행으로 평가받는 참신한 이름이지만 당시에는 유치원 이름 같다는 식의 부정적인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그러나 최종 단계에서 은행측의 윤병철 회장이 결단을 내려 하나은행으로 결정됐다.

문실장은 "그러나 아무리 세련되고 참신한 브랜드라도 기업이나 제품의 성공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충고했다. 훌륭한 이름도 중요하지만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이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 작명비는 건당 2천5백만원. 제품 브랜드의 경우 1천5백∼2천만원을 받고 있다. 국내 시장이 커졌다고는 하지만 업계 수위를 달리는 인피니트의 연매출이 25억원대에 불과해 수백억원을 벌어들이는 선진 외국 업체와 비교하면 아직도 영세한 편이다.

그러나 고부사장은 "국산 제품의 세계 시장 수출이 늘어나고 있고 일류 브랜드에 대한 국내 수요가 커 앞으로 시장 전망을 낙관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문실장은 "CI란 단순히 기업의 로고를 교체하는 작업이 아니라 기업의 미래 비전을 제시해 사내단합을 이루고 대외적으로는 고객들로부터 신뢰와 좋은 이미지를 얻도록 하는 경영 전략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유권하 기자

khyo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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