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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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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예부터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라 했다. 위정자 입장에서 백성의 마음을 올바로 헤아리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암행어사를 보내거나 왕이 직접 평복을 갈아 입고 저잣거리를 돌면서 백성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처럼 의견이 다양한 시대에 세상 인심을 정확히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특히 국민 의견이 여러 갈래로 나뉘는 정치·사회적 현안이나 선두다툼이 치열한 선거의 경우 민심의 동향을 족집게처럼 집어 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서 나온 게 여론조사다.

근대적 의미의 여론조사가 발달한 곳은 미국이다. 이미 19세기에 선거여론조사가 본격화돼 20세기 초부터 언론사들이 경쟁적으로 실시했다. 그러나 당시 여론조사는 수백만명의 유권자에게 우편으로 설문지를 보내는 식이어서 정확도가 낮았다. 일례로 리터러리 다이제스트사가 1916년 미 대통령선거 때 1백만명에게 설문지를 돌렸으나 2만명만이 응답,예측오차가 20%에 달했다.따라서 소수표본조사라는 과학적 방법을 채택한 조지 갤럽이 35년 매주 발간한 갤럽리포트를 현대 여론조사의 시초로 본다. 요즘엔 조사방법이 더욱 체계화·과학화돼 신뢰도가 많이 높아졌다.

독일의 5대 여론조사기관들도 정확한 예측으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양대 정당의 승패에 관한 한 예상이 빗나간 적이 없다.투표일 오후 6시 발표하는 출구조사도 거의 틀린 적이 없다.

그러나 이들도 지난 22일 총선 때는 곤욕을 치렀다. 각 조사기관의 총선 직전 예측과 출구조사가 엇갈린 것은 물론 한 조사기관의 출구조사도 시간이 흐르면서 반전을 거듭했다. 통상 오후 8시면 결정되던 승패가 이번엔 자정이 넘도록 오리무중이었다. 하기야 사민당과 기민·기사당의 득표율이 기적처럼 38.5%로 똑같았으니 불가항력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일부 조사기관이 총선 직전 정치적 선호도에 따라 특정 정당에 유리한 발표를 했다는 의혹이 남는다. 기민당과 친한 알렌스바흐는 시종 기민·기사당의 승리를, 소장이 사민당 당원인 포르자는 일찌감치 사민당의 우세를 예상했다. 이 때문에 여론조사가 아니라 여론조작이란 말까지 나왔다.

이게 어디 독일만의 얘기일까.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대선이 다가오면서 여론조사 결과가 계속 발표될 것이고 그때마다 후보들은 일희일비할 것이다. 당연히 말도 많을 것이다. 여론조사기관의 사명감이 더욱 요구되는 시점이다.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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