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로마제국은 닮은 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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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천년의 시간을 사이에 둔 고대 제국 로마와 현대의 초강대국 미국이 놀라울 정도의 유사점을 갖고 있다고 분석한 영국 TV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화제다.

지난 21일 첫 시리즈 '제국의 모델'을 방영한 영국 채널4 TV의 역사 다큐멘터리 '로마:AD 1'은 영국 역사학자들의 분석을 토대로 미국과 로마의 유사점들을 소개, 주목을 받았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인터넷을 로마의 도로망과 비교하는 등 거슬리는 부분이 있지만 설득력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평가했다.

◇압도적 군사력과 식민지=로마는 최고의 훈련과 최상의 장비로 무장한 군사력으로 지중해 전체를 지배했다. 국방예산 규모가 세계 1위인 미국의 군사력도 양적·질적으로 경쟁상대가 없으며 전세계 어느 곳이든 즉각 군대 투입이 가능하다.

미국은 로마처럼 식민지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전세계 40여개국에 군사기지를 갖고 있고 또 다른 나라에선 군사기지 사용권을 확보, 식민지 보유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갖고 있다.

미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유엔 1백90개 회원국 중 1백32개국에 미국의 군사력이 배치돼 있다.

◇제국 도로망은 미국의 인터넷=로마의 병력·물자 이동 속도가 이후 1천년 동안 따를 나라가 없을 정도로 신속했던 것은 식민지와 연결된 거미줄 같은 도로망 덕분이었다. 오늘날엔 인터넷이 이같은 도로망이 돼 '미국으로 통하는 길'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도로망인 인터넷이 미국의 군사·상업의 도구가 되고, 나아가 로마의 도로망이 인적 자원의 이동을 활성화해 라틴어 유포에 한몫 한 것처럼 인터넷도 영어의 세계 공용화를 촉진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문화로 세계를 지배'="로마의 위대한 정복은 창 끝이 아니라 로마식 목욕과 의복, 그리고 특유의 중앙난방에서 나왔다"고 일부 문화학자들은 말한다. 그만큼 문화적 영향력이 군사적 지배보다 강하다는 뜻이다. 오늘날 세계 어느 거리에서든 눈에 띄는 스타벅스·코카콜라·맥도널드, 그리고 전 세계에서 상영되고 있는 할리우드 영화는 미국의 막강한 문화적 지배력을 보여주는 증거다.

◇미움받는 존재="왜 우리는 미움을 받아야 하나." 9·11 테러 이후 미국 언론을 장식했던 이 한탄을, 기원전 80년 그리스의 테러에 충격을 받은 로마인들도 똑같이 던졌었다.

고대 사학자들에 따르면 당시 로마의 위협에 시달리던 그리스의 왕 미스리다테스는 특정한 날을 정해 그리스 내의 모든 로마인을 살해하도록 지시, 그리스 전역에서 8만 로마인들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전해진다.

마지막 공통점으로 제시된 것은 '흥하면 망하게 마련'이란 사실이다. 미국이 로마와 자신을 같은 반열에 놓기를 망설이는 것은 로마가 제국의 과잉 확산을 꿈꾸다 멸망했기 때문이라고 방송은 분석한다. "이라크 전쟁은 미국이 로마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라는 반미주의자들의 주장도 덧붙였다.

신은진 기자

nad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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