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내한하는 佛 석학 장 보드리야르]"정보화가 현실 왜곡할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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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성'을 그럴듯하게 풀어내는 프랑스의 석학 장 보드리야르(73)가 25일 처음 한국에 온다.

그는 26일부터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미디어-시티 서울 2002' 개막식에 참석하고 28일 개최되는 심포지엄에서 '이미지의 폭력'이란 주제발표를 할 예정이다.

"역설적인 상태는 전통적인 가치의 회복에 만족하지 않고 역설적인 사유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하며 '급진적인 사유'를 제안하는 그는 "사유의 급진성은 현실에 대해 더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다른 쪽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핵심은, 체계의 평형상태에 반대하는 극단으로의 운동이라는 얘기다. 현대 사회가 겪고 있는 여러 변동의 안팎을 뒤집어 보여주며 그 치명적인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고 끊임없이 환기하는 이 '포스트모더니티의 전도사'를 가상 인터뷰로 미리 만나본다. 답변 내용은 그의 주요 저작에서 발췌했다.

-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미국 뉴욕대와 캘리포니아대에서 강의하며 바쁜 일정 중에 이 먼 나라에 온 까닭이 있습니까.

"'미디어-시티 서울 2002'가 내세운 주제 '달빛 흐름'은 미디어를 달에 비유함으로써 내 흥미를 끌었습니다. 미디어와 테크놀로지를 정복의 수단이 아니라 잃어버린 낭만을 건설하는 도구로 쓰자는 제안이 흥미로웠어요. 이는 내가 세운 시뮬라시옹(모사) 이론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달빛 자체는 일루전(환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환상에 소망을 투사해 왔으니 이것이 곧 '근거 없는 이미지로서의 시뮬라크르(현실을 지배하는 가상 이미지)가 실제를 능가하게 되는 시뮬라시옹 과정' 아니겠습니까."

-1970년대 중반부터 선생이 부각한 '코드(code)'라는 용어가 그 시뮬라시옹과 중요한 연관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코드는 컴퓨터 공학의 이진법 코드이자 생물학에서의 DNA 코드이고, 텔레비전과 사운드 레코딩의 디지털 코드이며, 정보 테크놀로지의 코드입니다. 코드의 시대가 기호의 시대를 대체한 거죠. 그 자체로 원본인 코드로 인해 이제 생산되는 대상은 기존 의미의, 즉 자연 대상의 복제품이 아닙니다. 그래서 시뮬라시옹이 중요해집니다. 오늘날 사물들의 기원은 원래의 사물이나 존재가 아니라 공식 혹은 코드화된 신호나 숫자입니다."

-그렇다면 그 코드의 시대가 우리의 사회적 그물망 전체를 관통하기 시작했다는 건가요.

"그 징후 중 하나가 대립항들이 무너지고 모든 것이 결정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예술의 미와 추, 정치의 좌와 우, 매체에서의 진리와 오류, 대상들의 층위에서 유용성과 무용성 등 시뮬라시옹과 재생산의 시대에서는 무엇이나 상호교환이 가능해집니다. 지식인들이 절망적이라고 판단했던 대중은 이제 따라야 할 모델이 되는 거죠."

-선생의 이론이 인식론적으로 냉소주의에 빠졌으며,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에 기울었다는 시각과 함께, 그 핵심인 '코드'가 아직은 일관되게 이 세상을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비판하는 이들이 있는데요.

"나는 상징 및 물질 세계의 변동이 낳은 아주 실제적인 결과들을 가지고 이야기하며, 각종 미디어가 내놓는 이미지와 정보의 포화 상태가 점차로 지배적인 것이 되는 세계에서 이 변동이 중요하다는 걸 말할 뿐입니다. 가상성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교묘하게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갑니다. 이때 주체는 완벽하게 실현되지만, 그 순간 주체는 자동적으로 해체되어 객체가 되어 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공포이지요."

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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